조선후기 맥 끊긴 흑자기로 해외시장 여는 도예가
“검정빛 흑자기는 고려시대 귀족들이 즐겨 사용한 세련된 그릇인데 조선 말기 이후 그 맥이 끊겨 안타깝습니다.”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17일까지 두 딸과 함께 개인전 ‘흑유명가 가평요’를 열고 있는 도예가 김시영 씨(56·사진)는 검정색 예찬론으로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때 서예가 두남 이원영 선생 밑에서 서예를 배우며 먹을 갈았다”는 그에게 검정색은 숙명이었다. “연세대 금속공학과 재학 시절 태백산맥 종주 중 화전민 터에서 발견한 검은빛 도자 파편에 매료됐다”는 그는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고향인 가평에 ‘가평요’를 열었다.

현재 국내에서 흑자기만 전문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김씨가 유일하다. “13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야 하고 불의 변화에 아주 민감해 다들 기피한다”며 “유약과 불이 결합돼 빚어내는 신비로운 빛깔과 무늬에 매료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해외에서 더 인기다. 변화무쌍한 표면색과 무늬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그의 찻잔 하나가 경매에서 예상가 1000만원에 책정될 정도다. 도예가 사이에 ‘불의 마술사’로 통하는 그는 1999년 최고의 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 으뜸이’에 선정됐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든든한 힘이 돼주는 것은 아버지의 길을 잇겠다는 두 딸의 존재다. “제가 터득한 전통 흑자의 비법을 바탕으로 자인(이화여대 조소과 졸)과 경인(서울대 조소과 재학) 두 딸이 흑자기의 현대적 변용을 이뤄내길 바란다”고 소망을 밝힌다.

“흑색만큼 세련된 색은 없습니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오늘이야말로 흑자로 생활의 멋을 추구할 때”라며 김씨는 밝게 웃는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