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리스크관리본부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충분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한다는 겁니다. 다음은 다른 증권사의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약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길기모 메리츠종금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은 최근 3년간 신용위험이 있는 회사를 피해 거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는 LIG건설, 웅진그룹, 극동건설 등이 법정관리와 부도로 신용위험 상태에 빠졌을 때에도 다른 증권사들과 달리 전혀 손실을 입지 않았다. 리스크관리본부에서 미리 해당회사에 대한 부실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위험관리를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7명의 최정예 전문가

리스크관리본부에는 17명의 직원이 심사와 위험성관리를 맡고 있다. 부동산, 채권, 파생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로 구성돼 있으며 월 평균 100건이 넘는 신규사업을 철저히 분석하고, 사업시행에 따르는 위험을 미리 평가하고 있다. 리스크관리본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위험관리에 너무 치중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수익성에만 집중하면 위험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관리하며 ‘중간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리스크관리본부의 숙명이자 최대 과제다.

메리츠종금증권의 리스크관리본부는 이런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메리츠종합금융과 합병한 이후 한 건의 부실대출 손실이 없었던 점이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본부에서는 전문가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을 ‘비결’로 꼽았다. 길 본부장은 “일부 증권사들의 경우 리스크관리본부를 일종의 ‘계륵’처럼 여겨 신용평가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전문가들을 배치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우리 본부는 직원 개개인이 신용평가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노’할 때 홀로 ‘예스’

메리츠종금증권 리스크관리본부의 모토는 ‘다른 증권사에서 좋다고 하는 거래를 한번 더 의심하고, 다른 증권사에서 나쁘다고 하는 거래를 한번 더 검토하자’다.

이 본부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2010년 두산건설과의 거래 건도 이런 모토가 있어 가능했다. 당시 두산건설은 경기도 용인시 삼가동 아파트를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1100억원의 만기를 앞두고 차환 발행에 나섰다. 두산그룹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좋지 않아 쉽게 거래상대를 찾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리스크관리본부 관계자는 “담보를 평가해보니 충분히 회수 가능한 수준이었고, 두산그룹과 몇 차례 거래를 통해 신용을 쌓아둔 상황”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두산건설 입장에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서 외면당할 때 우리 회사가 자금을 대준 것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보장되는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좋은 거래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산건설은 당시 발행한 ABCP를 2012년 모두 상환했다.

작년 12월에는 롯데건설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매수한 일이 도마에 올랐다. 업황 부진에 시달리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매물을 굳이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 리스크관리본부의 생각은 달랐다. 길 본부장은 “당시 대안이 될 수 있었던 롯데쇼핑의 하이브리드채권도 금리차이(크레디트스프레드)로 인한 손실 우려가 있었다”며 “이런 위험성이 롯데건설이 지닌 위험성과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 판단해 최근 나온 매물 중 그나마 배당수익률이 높은 롯데건설 RCPS를 매입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위험성 클 경우 과감히 포기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한 거래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도 이 본부의 특징이다. 작년 상반기에는 한 대형마트에서 내놓은 점포의 매각 후 재임대(세일앤드리스백) 거래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가 포기한 일이 있었다. 흔치 않은 경우다.

이유는 예정에 없던 투자확약서(LOC) 요구 때문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부동산 거래에서 좀처럼 없는 LOC를 요구했고, 이후 우리 측에서 몇 가지 면책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주관사가 거부해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실 큰 문제 없이 조용히 마무리될 가능성이 90% 이상이었으나,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기했다”고 말했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기회를 놓친 적이 없지는 않다. 2012년 유럽 금융위기 당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격하게 높아지자 국내 많은 증권사들이 유럽국가의 CDS프리미엄에 투자했다. 메리츠종금증권만 투자에 미적거렸다. 투자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2~3개월 연구한 끝에 대비책을 마련해 투자하기로 했을 때에는 이미 CDS프리미엄이 떨어지기 시작한 후였다.

길 본부장은 “아쉽기는 했지만, 이것이 우리 리스크관리본부의 의사결정 방식이어서 딱히 불평하는 직원은 없다”며 “오히려 이런 기회를 통해 대비책을 마련해 놓으면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