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로얄 패밀리', 순종이 가출?…잔 웃음 주는 퓨전 사극
엉뚱하다 못해 발칙하기까지 하다. 역사 속 무거운 인물들을 희화화하는 게 부담스러웠을까. 극은 “얼렁뚱땅 뒤죽박죽인 이야기, 픽션 앤드 픽션”임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조선의 마지막 왕가인 고종과 명성황후, 순종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해설자가 순종의 내시였던 증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책에 담긴 ‘왕세자 실종 사건’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대적 격변기인 구한말의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없다. 내시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책을 써내려가는 첫 장면부터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내시의 정체가 알고 보니 영국에서 건너온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로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역사를 내려놓고 그냥 웃고 즐길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진다.

우리 시대 ‘강남 아줌마’ 못지않게 아들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극성 엄마 명성황후, 아내의 기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는 불쌍한 중년 아빠 고종, 중압감과 등쌀에 못 이겨 가출을 감행하는 꿈 많은 소년 순종과 주변 인물이 얼기설기 엮이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시종일관 ‘얼렁뚱땅 뒤죽박죽’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하지만 나름대로 짜임새는 있다. 연극의 놀이성과 뮤지컬적인 감수성을 잘 살린다. 배우들은 역할을 바꾸는 연극 놀이를 하는 듯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무대에서 즐겁게 논다. 시대를 넘나드는 소재로 언어유희를 구사하고, 중간중간 애드리브도 섞어가며 웃음을 유발한다. 5인조 밴드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와 상황에 들어맞는 감칠맛 나는 노래는 다소 경박스러운 무대를 완충시킨다.

지난해 신인 창작자 육성을 위한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젊은 창작인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엿보이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무대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사극’적 재미와 시트콤 및 개그콘서트식 코미디를 버무려 가족과 꿈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담아내려고 하지만 웃음 이상의 감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자잘한 웃음만 주는 소극 수준에 머문 것이 아쉽다. 오는 23일까지, 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