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개각 요구에…靑 "또 계절풍이냐"
정치권발(發) 개각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얼굴)이 1월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각 불가론을 밝힌 이후 한동안 잠잠했으나 카드사 고객 정보유출 파문이 갈수록 확대되자 정치권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개각론을 다시 꺼내고 있다. 개각론에 대해 청와대는 “또 계절풍이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기춘 비서실장 사의설까지 겹치면서 일각에선 설 전후로 당·정·청의 전면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여야 모두 개각론 합창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상 최악의 신용정보 대량 유출로 온 국민이 공황에 빠졌는데 경제팀 수장이란 분이 불안감에 시달리는 국민 분노에 기름을 퍼붓는다”며 청와대와 내각에 대한 전면적인 인사 쇄신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이번 사건의 직접 책임이 있는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무책임하고 무능한 부총리는 더는 변명 말고 짐 싸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내 소장파인 김상민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현오석 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감원장은 반드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보 유출 대책 마련이 급선무”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개각론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그래서 어쩌란 것이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 관계자는 “사안이 터질 때마다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위기를 넘기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아니지 않으냐”며 “정보가 유출된 경로와 구조적인 원인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연초 기자회견에서 “과거에는 정국 전환이라든가 또는 분위기 쇄신 수단으로 개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벤트성 개각은 안 된다”며 “역대 장관들의 평균수명이 14개월인데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개각에 부정적인 이유는 ‘청문회 트라우마’도 한몫한다는 분석도 있다. 새 정부 출범 당시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몇몇 장관 후보가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거나 인준이 늦어져 정부 출범에 차질이 빚어졌던 경험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사람 고르는 데 신중한 박 대통령이 청문회 경험을 계기로 한번 쓰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 인사 스타일을 더 고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문회가 야당 정치공세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부담이다.

◆일부 장관 교체 가능성도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금융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초대형 사건이 터진 데다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으로 여론이 악화됐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모종의 결단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분위기다.

여권 내 다른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개각설을 부인하면서도 개각요인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추진할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금융 당국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일부 장관 교체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은 24일 현 부총리를 불러 금융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종태/이태훈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