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민 기자 ] 연초부터 환율이 요동치며 국내 기업 수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은 기술력과 한류 열풍을 바탕으로 청마의 해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세계 일류상품 및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한 제품들 중 화장품과 섬유 관련 기업 세 곳의 연구소장을 만나 제품과 기술력 비결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산자부는 매년 수출 경쟁력 강화와 격려 등을 위해 세계 일류상품 및 차세대 일류상품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팩트이지만 제품을 열어보면 촉촉한 파운데이션을 머금고 있는 스펀지가 들어있다. 전용 퍼프에 제품을 묻혀 얼굴에 두드려주면 한 번에 자외선차단과 결고운 피부 화장이 해결된다. 아모레퍼시픽이 2008년 개발해 세계 최초로 선보인 도장(스탬프) 타입의 자외선 차단제 '쿠션 파운데이션'이다. 2008년 처음 등장한 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1400만개 넘게 팔렸고, 산자부로부터 2013년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같은 성공을 전두지휘한 것은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메이크업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최영진 상무이다. 1994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색조화장 개발에만 몰두한 지 20년째인 최 상무에게 쿠션 파운데이션의 성공 스토리를 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독자 제형 '쿠션 파운데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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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 파운데이션의 겉모습만 보지 말아주십시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기술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만난 최 상무는 쿠션파운데이션이 독자적인 유형의 제품이란 점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술력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쿠션 파운데이션의 정식 명칭은 '셀트랩(Cell-trap)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스펀지 멀티 쿠션 제형의 파운데이션'이다.

쿠션 파운데이션은 선크림과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등 기초 메이크업 제품을 특수 스펀지 재질에 복합적으로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아냈다. 언제 어디서나 덧바를 수 있고 기존의 메이크업을 보완해주는 성능의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기 위해 메이크업연구소에서 1년여 간의 개발 기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기존에 가벼운 제형의 자외선 차단제는 사용감이 좋지만 흐르기 쉬워 튜브나 펌프 용기를 이용했고, 이 경우 휴대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쿠션 파운데이션은 팩트형 용기를 채택했고 덧바를 때 밀리기 쉬운 제형도 보완했다.

쿠션이란 제품의 콘셉트는 주차 확인 도장에서 따왔다. 안정성과 휴대성을 동시에 갖춘 케이스를 고민하던 중 액체가 흐르지 않고 균일하게 주차 티켓에 찍히는 주차 확인 도장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이다.

쿠션파운데이션에 맞는 스펀지를 찾기 위해 연구진은 사인펜제조업체와 인형공장 등을 직접 발로 뛰었다. 그 결과 80여만 개의 구멍을 갖춘 발포 우레탄 폼이 최적이란 결론을 도출했다.

이에 내용물을 발포 우레탄 폼에 담아 흐름성을 낮췄고 이를 다시 팩트에 넣어 휴대성을 높였다. 이에 새로운 형태의 스탬프 타입의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어냈다.

내용물을 찍어 바르는 퍼프도 특수한 형태의 습식 우레탄 퍼프를 채용해 내용물이 뭉침없이 얇고 균일하게 피부에 발릴 수 있도록 했다.

최 상무는 "점도가 낮은 제형과 스펀지, 팩트형 용기가 상호 보완적이면서 통합적인 역할을 한다"며 "특히 점도가 낮지만 '흐르지 않는 액체' 제형의 W/O(유중수형·water in oil) 타입 자외선 차단제를 조성해 편의성을 높이는데 공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특화된 공정을 통해 안료가 고르게 스펀지에 분산되고 사용 시 얇게 발라도 커버력이 좋게 제품을 구현했다"며 품질에 대해 자부했다.

◆ 기술력 인정받은 판매기록 5년간 1400만개…해외서도 열띤 반응


아모레퍼시픽 연구진의 노력의 결과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쿠션파운데이션은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발매 5년 만에 국내외에서 1400만개 판매 돌파란 대기록을 세웠다. 2008년 아이오페 에어쿠션을 시작으로 헤라 UV미스트쿠션, 아모레퍼시픽 트리트먼트 CC쿠션, 라네즈 BB쿠션, 베리떼 UV멀티쿠션 등 아모레퍼시픽의 여러 브랜드를 통해 각각의 특성을 달리해 출시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은 해당 기술을 통해 2012년 대한민국 기술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뒤이어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선정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됐다.

아모레퍼시픽은 쿠션 유형의 제품 기술에 대해 국내외에 걸쳐 57건의 특허 출원 및 10건의 특허 등록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쿠션 파운데이션은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미국, 동남아 등에서도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 다양한 국가의 소비자들에 맞는 컬러와 제형으로 제품을 개편하면서 세계시장에서 블루오션 개척에 나선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처음으로 쿠션 파운데이션을 수출한 것은 2012년 아이오페 에어쿠션을 일본 홈쇼핑에 소개하면서부터다. 당시 홈쇼핑 방송마다 매진되는 등 일본 고객들의 반응이 예상을 뛰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201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은 중국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대만, 홍콩에는 '라네즈의 스노우 BB 수딩 쿠션'을 판매하고 있다. 첫 해인 2012년에만 해외에서 530만달러(약 56억원)란 수출 실적을 거뒀다.

미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아모레퍼시픽의 플래그십 브랜드인 AMOREPACIFIC에서 '트리트먼트 CC 쿠션'을 출시했다.

최 상무는 "국가와 인종에 따라 맞는 색조와 선호하는 제형이 다르다"며 "동남아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친수성 등을 조절했고 미국에서는 히스패닉계 인구를 위해 색조 범위도 확대했다"고 말했다.

해외 고객들에게 더욱 널리 사랑받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국가별로 적합한 쿠션제품을 개발하고 화장법을 소개한다는 방침이다.

◆ 최영진 상무, 색조 개발에 올인한 20년…슬라이딩 팩트 등 히트상품

최 상무에게도 쿠션 파운데이션의 성공은 뜻 깊다. 한국 색조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며 여러 히트상품을 내놨지만 새 시장을 연 제품의 성공은 더욱 각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쿠션파운데이션 역시 아류제품이 있지만 기술에서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고 실제 제품 재구매율을 보면 자사 제품이 월등히 높다"며 "과거 20년간 국내 색조 화장품 기술이 성장하면서 파운데이션은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최 상무는 1994년 아모레퍼시픽(옛 태평양) 기술연구원에 입사한 후 색조 화장품 개발에 줄곧 몸담고 있다. 이색적인 슬라이딩형 팩트 케이스와 함께 대히트한 라네즈 슬라이딩팩트를 비롯해 라네즈 클린앤컬업 마스카라, 지난해 180억원어치가 팔린 헤라 루즈 홀릭 립스틱 등도 최 상무의 손을 거쳤다.

색조 화장품은 분류가 5~6개로 한정적이지만 시장의 호흡이 기초제품보다 빠르고 변화무쌍하다. 이에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통한 경쟁력 확보만이 살 길이라고 최 상무는 강조했다.

그는 "유럽계 디자인 전문가 등과 지속적으로 연계하고 다른 회사 제품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유행을 선도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 있는 색조화장품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꾸준히 연구인력을 늘리며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 담당조직은 2006년 말 299명에서 지난해 3분기 말 399명으로 급증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최 상무는 "연구소에서는 1~2년 뒤의 미래를 예측하고 제품을 개발하게 마련인데 그동안 실패작도 있었지만 제품 출시 후 기대에 걸맞은 반응이 돌아왔을 때가 가장 기쁘다"며 걸음을 옮겼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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