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거래소, M&A로 영토 넓히는데 한국은 공공성 논란에 손놓고 구경만
독일증권거래소(도이체뵈르제)는 작년 말 싱가포르 상품·파생거래소 지분 52%를 전격 인수했다. 이달 초엔 대만 선물거래소 지분 5%를 사들이겠다는 기존 방침도 재확인했다. 아시아에 파생상품청산소를 설립해 시장을 확대하는 ‘그랜드 플랜’을 착실히 실행에 옮기고 있다.

◆아시아 증권시장 각축전

도이체뵈르제만이 아니다. 글로벌 거래소들은 ‘합종연횡’을 통한 영역 확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신규상장(IPO) 기업을 유치하려는 국경을 뛰어넘는 경쟁도 치열하다. 대형 거래소 간 인수합병(M&A) 열기도 뜨겁다.

이런 점에서 한국거래소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거래소 지분 인수 등으로 글로벌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선결 조건인 민영화와 IPO를 추진해야 하는데 공공기관 개혁·방만경영 논란 속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해외 거래소들의 글로벌화 최대 격전지는 아시아 시장이다. 작년 상반기 아시아 지역 주식거래대금은 10조1000억달러로 2012년 하반기(6조6000억달러)에 비해 5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럽·중동·아프리카(15.6%)와 남북아메리카대륙(9.8%)의 거래대금 증가율을 압도한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LSE)가 작년 10월 자회사 FTSE의 지수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중국 채권지수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시아 시장의 급성장과 무관치 않다. 작년 11월 런던상품거래소(ICE)는 파생상품 시장 선점을 위해 싱가포르상업거래소(SMX)를 1억5000만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일본거래소는 도쿄상품거래소(TOCOM)를 비롯한 일본 내 3개 주요 상품거래소와의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 거래소들이 글로벌 시장을 놓고 전례 없는 정면 대결을 벌이는 이유는 수수료 하락과 거래량 감소에 따른 수익악화 때문이다. 작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 런던증권거래소(LSE), 도이체뵈르제 등 4대 거래소의 매매수수료 수익은 78억6600만달러로 2008년(96억5700만달러)의 81.45%에 불과하다. 정보기술(IT) 발달과 주식매매 방식의 변화는 국가 간 영역이 의미가 없는 초대형 글로벌 거래소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기관해제·IPO 논란에 발목 잡혀

반면 한국거래소는 시장 재편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고 큰 그림조차 없다. 증권사 선물회사 등 회원사들은 88.17%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혁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사실상 최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낙하산 인사’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외 거래소 M&A를 시도하거나 지분교환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구도다. 현재 비상장 상태여서 지분의 정확한 시장가치를 추정하기도 힘들다.

한국거래소가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제약이 있는 것도 국제화의 걸림돌로 꼽힌다. 거래소는 시장규정 개정, 신규사업 진출, 인력 확충 등 사업 대부분을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진행해야 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406조1항)은 한국거래소가 발행주식의 5% 이상 지분을 소유하는 데 제한을 두고 있고 회원사 간 주식 양도시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환골탈태’가 민영화 선결조건

한국거래소가 동남아 지역 등에 각종 인프라를 수출하고 해외 거래소 M&A, 지분투자 등으로 글로벌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기성과 위주의 경영에서 탈피해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는 글로벌 거래소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민영화·기업공개 문제를 본격 논의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민영화 등을 통한 사업다각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가 공공기관의 ‘족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율경영을 하려면 ‘신의 직장’ ‘방만경영’이라는 사회 전반의 부정적 평판을 털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철환 단국대 교수는 “한국거래소는 방만경영과 저질 서비스라는 오명을 벗고 정상적인 경영과 서비스 품격을 높이기 위한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황정수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