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훈동 노화랑의 새해 첫 기획전 ‘5인의 영파워’에 전시된 김덕기 씨의 ‘바다를 바라보며’.
서울 관훈동 노화랑의 새해 첫 기획전 ‘5인의 영파워’에 전시된 김덕기 씨의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이란 거대하거나 웅장한 게 아닙니다. 위대하거나 막강한 것은 더욱 아니고요. 작고 예쁜 것, 솔직한 대화, 따스한 웃음이 바로 행복이죠. 제가 평생 그리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화폭에 담아 온 ‘색채 화가’ 김덕기 씨(44)에게 그림은 모든 사람에게 편안함을 선사하는 ‘안락의자’ 같은 것이다.

김씨를 비롯해 윤병락(46), 박성민(46), 송명진(40), 이강욱(38) 씨 등 탄탄한 화력을 갖춘 젊은 현대미술가 5명이 15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5인의 영파워’ 기획전을 연다. ‘한국 현대미술의 프리즘’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한국적인 미감을 서로 다른 현대적 기법으로 표현한 100호 이상 대작 20여점이 걸린다. 참여 작가들은 서양화에 뿌리를 두고 뜨거운 실험정신을 펼쳐보이지만 작업에선 각기 다른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술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경매와 개인전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 작가의 다양한 미학적인 ‘스펙트럼’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올해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빨간 사과를 손에 잡힐 듯 실감 나게 그리는 윤씨는 연둣빛 풋사과를 먹음직스럽게 작업한 3m 크기의 대작 1점과 북극곰에 사과를 데페이즈망(depaysement·엉뚱한 결합) 기법으로 그린 작품 2점을 내보인다. 사진보다 더 실감 나는 ‘눈속임 묘사’로 우리의 창조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극사실주의 화가 박씨 역시 얼음 속에 있는 과일이나 채소를 정교하게 묘사한 ‘아이스캡슐’ 시리즈 2점을 건다. 작가는 “얼음 속에 갇힌 생명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생명들”이라며 “얼음 속 식물 이미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추억을 되살리는 메모리칩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녹색 화가’ 송씨는 자연을 상징하는 대표적 색상인 녹색으로 다양한 인공 구조물을 화면 속에 배치한 작업을 내놓는다. 거대한 현대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묘한 색채 변화와 붓자국 하나 남기지 않은 꼼꼼한 붓질을 더듬다 보면 작가의 노동에 감탄하고 재치있는 발상에 즐거워진다. 그는 “초록은 단순히 자연의 인상을 운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촉수를 가진 동물이나 잠재 에너지로 가득한 광물 같은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매진을 기록한 서양화가 이씨는 현미경을 통해 살펴본 세포와 신경섬유 조직 이미지를 바탕으로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선보인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 아트&디자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세함과 거대함을 대비시켜 추상성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관람객들이 한국 미술 문화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비교하면서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20일까지.(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