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히든챔피언 2734개 중 독일 기업이 '절반'
< RSG : R&D·Skilled Worker·Globalization >
멀찌감치 앞서 나가는 전략
하지만 이 회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첨단제품을 속속 개발하는 ‘혁신형 기업’이다.
이 회사에는 수많은 신제품이 가득 차 있다. 마치 박람회장에 온 듯하다. 우선 스마트폰처럼 공작기계를 터치스크린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제품이 놓여 있다. 풍력발전기, 태양광발전장치, 전기자동차용 충전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있다.
풍력발전기는 수직으로 회전하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도는 특이한 제품이다. 날개의 앞·뒷면 굴곡을 다르게 디자인해 바람이 불면 양력이 생기고 날개를 회전시킨다. 이 회사는 이처럼 남들이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 선두에 만족하지 않고 ‘멀찌감치 앞서 나가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뤼디거 카피자 DMG모리세이키 회장은 “터치 방식의 간편한 공작기계 작동시스템인 ‘셀로스(Celos)’를 이미 개발했고 올해부터 본격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가 쓰는 전력의 15%도 마당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시스템으로 충당할 정도로 대체에너지 관련 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기업은 임금수준이 높아도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정상을 달린다. 독일에는 벤츠 BMW 아우디 지멘스 보쉬 머크 등 세계적인 제조업체가 수없이 많다. 세계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중소기업도 수천개에 이른다. 독일의 경영컨설팅업체 지몬쿠허앤드파트너스(대표 헤르만 지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 ‘히든챔피언’ 2734개 중 독일 기업이 47.8%인 1307개에 이른다. 한국(23개)의 56배다.
히든챔피언은 ▲시장점유율이 세계 3위 이내에 들거나 대륙별 1등을 하는 기업 중 ▲연매출이 50억유로를 밑돌고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를 말한다. 어떻게 독일 기업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일까.
연구개발에 압도적인 투자
첫째, 과감한 연구개발(R&D)이다. 도르트문트에 있는 엘모스는 독일 미국 러시아 등 7곳에 연구개발센터를 구축했다. 자동차 전장제품용 칩 등을 만드는 이 회사가 창업 30년 만에 이 분야 강자로 떠오른 것도 과감한 연구개발 덕분이다. 독일과 미국 실리콘밸리에 공장을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생산시설 글로벌화에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 글로벌화에 나서고 있다.
이런 독일 기업의 연구개발 전통은 100년 이상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자동차를 보자. 독일의 기술자 니콜라스 오토는 압축-폭발-배기-흡입으로 이뤄지는 4행정 오토엔진을 개발했고 카를 벤츠는 가솔린엔진을 개발해 자동차의 선구자가 됐다. 루돌프 디젤은 효율이 높은 디젤엔진을,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는 전신기와 유도전기를 이용한 발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자동차 ABS, 제트비행기 등도 독일에서 개발됐다. 장거리로켓 브라운관 전자현미경 윤전기 전기자동차 화학염료 태양전지 사출기 등도 독일인에 의해 선을 보였다. 이런 연구개발 전통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경영여건이 나빠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만은 줄이지 않았다.
지몬 대표는 “일반 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3%이고 ‘글로벌 톱 1000’ 기업은 3.6%인 데 비해 히든챔피언은 6%에 달한다”며 “독일의 히든챔피언은 압도적으로 많은 자금을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특허로 연결된다. 독일 기업의 유럽특허 건수는 최근 10년간 13만32건에 달했지만 한국은 9859건에 그쳤다. 지몬 대표는 “히든챔피언으로 올라서기 위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술혁신”이라고 강조했다.
20~30년 근속자 수두룩
둘째, 마이스터와 장기근속자를 비롯한 숙련된 기능인력이다. 명품 세탁기제조업체인 밀레에는 100명이 넘는 마이스터가 일하고 있다. 쾰른대성당의 파이프오르간 등 50여국에 파이프오르간을 제작 설치한 클라이스는 종업원이 65명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20~30년 된 숙련공들이다.
셋째, 적극적인 글로벌화다. 중소기업조차 각국에 대리점을 두고 수십개국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많다. 전자부품업체인 피닉스컨택트는 해외 80곳에 지사 및 파트너를 두고 영업하며 고객에 대한 밀착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연구개발 숙련인력 글로벌화라는 ‘RSG’ 3박자가 독일 전차군단의 엔진이 되고 있다.
빌레펠트=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