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행사갈땐 직원 옆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외출장땐 직원 자녀·아내 선물까지 챙겨
“아줌마, 거기 주차하면 안 됩니다.” 제대혈과 줄기세포치료 국내 선두 업체인 메디포스트의 양윤선 사장은 따로 운전기사가 없다. 2000년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기사를 둔 적이 없다. 회사가 코스닥시장에 상장하고 한때는 시가총액이 2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화제가 된 기업의 오너 경영인이지만 여전히 직접 차를 몬다.

직원을 행사장 입구에 먼저 내려주고 주차공간을 찾아 돌아다닐 때는 호텔 직원들로부터 어김없이 ‘아줌마’ 소리가 날아온다. 먼저 내린 직원은 안절부절못하지만 정작 양 사장은 “사장이 운전하면 어때서?”라며 태연하다. 한 직원은 “주차까지 직접 하는 사장님 모습이 처음엔 무척 낯설었다”며 “지금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스타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기자와 만난 날에도 직원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양 사장은 뒤늦게 주차증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직원 아이들 나이까지 꿰는 큰누이의 섬세함


김동현 메디포스트 연구부 차장은 지난달 말 깜짝 선물을 받았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양 사장이 “지난번에 힘든 프로젝트를 묵묵히 잘 해줘 고맙다”며 네 살, 일곱 살인 두 아들의 모자와 아내 화장품을 선물로 건넨 것. 4박5일간의 빠듯한 일정에도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 선물을 직접 골랐을 모습을 떠올리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메디포스트 직원 중에서는 김 차장처럼 사장에게 유아용 옷이나 외국 캐릭터 학용품을 선물 받은 이가 적지 않다. 양 사장은 아이를 갓 출산했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들을 기억해뒀다가 출장 때면 빠뜨리지 않고 선물이나 기념품을 챙겨온다. 양 사장은 지인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가게 되면, 얼마 뒤에 반드시 직원들을 데리고 다시 한 번 그곳을 찾는다고 한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기는 양 사장의 리더십은 1남3녀 중 맏딸로 자란 성장 배경과 무관치 않다. 어려서부터 두 여동생, 막내 남동생과 우애가 남달랐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믿는 그는 자식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사랑 같을 순 없듯,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은 회사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를 따르라’는 방식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담당 임원에게 철저하게 권한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직원들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소프트 리더십이 어려움 속에서도 13년간 창업기업을 이끈 원동력이다.

수석 꼬리표 떼고 바닥서부터 뛴 사업가로 성공 변신


양 사장은 ‘서울대 의대 수석졸업’ ‘전문의 자격시험 전국 수석’ 등 학창시설 ‘수석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그에게선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연말이면 송년 모임에 참석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대학 3학년 때는 의대가 관악캠퍼스에서 대학로 동숭동으로 옮기면서 노래패 ‘메아리’ 활동을 못 하게 되자 직접 노래패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장윤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당시 ‘하늘이 내린 목소리’라는 별명으로 노래패 메인보컬을 맡았던 ‘절친’이다. 장 교수는 현재 메디포스트가 개발 중인 소아용 폐질환 줄기세포치료제 ‘뉴모스템’의 2상 임상시험을 맡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국내 제대혈 시장의 개척자다. 현재 40%대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지만 고비도 적지 않았다. 위기는 양 사장이 삼성서울병원 의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사업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찾아왔다. 제대혈이 유명세를 타면서 2003~2004년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각종 흑색선전과 가격 덤핑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2005년 황우석 사태까지 터지면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300억원이던 매출은 100억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제대혈에서 돈을 벌어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에 투입하던 회사 운영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제대혈 사업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정부기관 언론뿐 아니라 직접 홍보물을 들고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다녔다. 차를 몰고 가다가 산부인과가 눈에 띄면 무작정 뛰어들어갔다. 의사 출신이라고 밝혀도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느냐’며 문전박대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양 사장은 “비상장사인데다 아직 사업이 자리도 잡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위기가 찾아오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결국 직접 발로 뛰면서 사실관계를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는 정말 제대혈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푹 빠져 있었다”고 했다.

차세대 줄기세포치료제 개발로 글로벌 전문기업 도전

2012년 오랜 연구개발 끝에 성체줄기세포로 퇴행성 관절염과 외상성 연골 손상을 치료하는 ‘카티스템’(→세계최초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다. 초기 월 20건이던 수술 건수는 최근 월 50건으로 늘면서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양 사장은 앞으로 메디포스트를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회사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착착 실행해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의료 수요 급증을 눈여겨보고 있다. 양 사장은 “중국 신흥 부자들의 의료 수요를 감안할 때 조만간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서도 중국이 큰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국적 제약사가 선점한 화학의약품 분야에서는 뒤처졌지만 줄기세포치료 분야에서는 경쟁을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메디포스트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매 치료제 ‘뉴로스템’과 폐세포재생치료제 ‘뉴모스템’의 국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상용화된 카티스템은 호주와 뉴질랜드 홍콩 등 국내 임상결과를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위주로 먼저 수출계약을 체결,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 전문기업’을 향한 의사 출신 CEO의 도전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