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정석범 기자
아비뇽=정석범 기자
프랑스 북부 파리에서 남쪽의 지중해 연안으로 테제베를 타고 내려가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차창 밖 풍경이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가장 큰 변화는 지붕의 색깔. 파리에서는 짙은 남색 또는 회색이던 지붕이 얼마 후에는 갈색 톤으로 변하고 다시 남쪽이 가까워지면 오렌지빛으로 변한다.

이유는 이렇다. 파리를 비롯한 북부지방은 1년 내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 햇빛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짙은 색 지붕이라야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흡수해 온기를 보존할 수 있다. 반면에 남쪽의 프로방스 지방은 벌써 5월만 돼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나가면 살이 익을 정도로 햇볕이 따갑다. 집이 달아오르는 것도 순식간이다. 빛은 무조건 발산하는 게 현명하다. 집 외벽을 하얀색이나 엷은 색으로 칠하는 이유다. 특히 기와를 다른 밝은 색을 마다하고 오렌지색으로 올린 이유는 각별하다. 환경적 측면과 함께 주변의 하늘, 바다의 푸른색과 상큼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붕은 환경적 요인과 심미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 지혜의 산물인 셈이다. 보라, 아비뇽의 가을풍경 그 얼마나 상쾌한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