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진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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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춘 씨 성곡미술관 등서 개인전
나무의 수액 냄새가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진동한다. 뿌리 뽑힌 채 천장에 매달린 아름드리나무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내뿜는 거친 입김이다. 오랫동안 작가의 작업실 마당을 지키던 단풍나무를 이렇게 했다는 게 놀랍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 내년 1월5일까지 여는 ‘박병춘: 길을 묻다’전을 보기 위해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이 광경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왜 이런 ‘잔혹 행위’를 불사한 것일까. 그 배경에는 화가 박병춘(덕성여대 교수)의 지난한 역정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한국 미술계에 설치미술 광풍이 몰아치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화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부분의 화가가 한숨을 내쉴 때 청년 작가 박병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힘겨운 빙하기를 치열한 실험과 모색의 기회로 삼았다. 전통 한국화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서양화 재료와 조형어법을 실험했고 입체 조형에 손을 대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와 ‘한반도 지형’ 시리즈로 화단의 선두주자가 될 때까지 그는 끊임없는 자기부정 속에 견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갔다. ‘나무의 살해’는 곧 과거와의 단절과 또 다른 변신을 향한 결연한 다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 출품작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2000년대 이후 작품보다는 치열한 실험을 계속해 나간 1990년대 작품이다. 먹과 아크릴을 섞어 그린 ‘흔들리는 대지-인간’에서는 굵고 검은 먹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사군자’ 시리즈에서는 선비의 표상이던 사군자에 인간적 욕망의 상징들을 거친 붓질로 덧붙여 전통사회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박씨를 스타 덤에 오르게 한 ‘한반도 지형’ 시리즈와 화산지형으로 유명한 인도 함피의 풍경을 담은 붉은색 풍경화도 함께 선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국화단의 치열한 자기 모색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미래 한국미술의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는 전시다. (02)737-7650
한편 이번 전시와 함께 경기 파주 헤이리의 갤러리 이레에서는 오는 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작가의 또 다른 개인전 ‘화필기행’이 열린다. 지난해 2월 전세보증금을 빼 가족과 함께 떠났던 유라시아 일주여행에서 만난 인상적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 (031)941-4115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 내년 1월5일까지 여는 ‘박병춘: 길을 묻다’전을 보기 위해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이 광경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왜 이런 ‘잔혹 행위’를 불사한 것일까. 그 배경에는 화가 박병춘(덕성여대 교수)의 지난한 역정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한국 미술계에 설치미술 광풍이 몰아치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화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부분의 화가가 한숨을 내쉴 때 청년 작가 박병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 힘겨운 빙하기를 치열한 실험과 모색의 기회로 삼았다. 전통 한국화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서양화 재료와 조형어법을 실험했고 입체 조형에 손을 대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와 ‘한반도 지형’ 시리즈로 화단의 선두주자가 될 때까지 그는 끊임없는 자기부정 속에 견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갔다. ‘나무의 살해’는 곧 과거와의 단절과 또 다른 변신을 향한 결연한 다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 출품작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2000년대 이후 작품보다는 치열한 실험을 계속해 나간 1990년대 작품이다. 먹과 아크릴을 섞어 그린 ‘흔들리는 대지-인간’에서는 굵고 검은 먹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사군자’ 시리즈에서는 선비의 표상이던 사군자에 인간적 욕망의 상징들을 거친 붓질로 덧붙여 전통사회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박씨를 스타 덤에 오르게 한 ‘한반도 지형’ 시리즈와 화산지형으로 유명한 인도 함피의 풍경을 담은 붉은색 풍경화도 함께 선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국화단의 치열한 자기 모색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미래 한국미술의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는 전시다. (02)737-7650
한편 이번 전시와 함께 경기 파주 헤이리의 갤러리 이레에서는 오는 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작가의 또 다른 개인전 ‘화필기행’이 열린다. 지난해 2월 전세보증금을 빼 가족과 함께 떠났던 유라시아 일주여행에서 만난 인상적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 (031)941-4115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