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에다 '규제 허들'까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는 날마다 울상입니다. 1인가구가 급증하는 '솔로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고 합리적인 소비로 자체 브랜드(PL·PB) 개발도 봇물을 이룹니다. 진열대와 TV, 온라인·모바일 구분없이 오늘날 판매경쟁은 손바닥 위에서도 치열합니다. '21세기 베니스의 상인'으로 불리는 MD(merchandiser)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꾸준한 영업력이 곧바로 유통채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불멸의 '맨파워'로 쓰러져가는 유통기업까지 일으켜 세운 MD의 밤낮 없는 활약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 주>
유통업계 MD들은 그동안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파산 직전의 중소기업을 되살리기도 했고 자칫 소비자들이 구경 한 번 못하고 지나칠 뻔한 제품을 밖으로 끄집어내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
몇 안 되는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다가 일명 '국민 제품'으로 떠오른 '항아리갈비' '뱀독 크림'에서부터 '군대리아'까지. 이들 '히트 상품' 모두 MD들의 밤샘 고민 덕분에 탄생한 '성공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TV홈쇼핑 '대박 상품의 교과서'로 꼽히고 있는 '전철우의 항아리 갈비'. 이 제품 이후 홈쇼핑과 연예인의 결합이 유행처럼 번졌다. / 사진제공= NS홈쇼핑 ◆ TV 홈쇼핑 '대박 상품'의 교과서…'전철우의 항아리 갈비'
홈쇼핑 MD들 사이에서 '깨질 것 같지 않은' 매출 신기록을 세우며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제품이 있다. 8년 전인 2005년 NS홈쇼핑에서 론칭한 '전철우의 항아리 갈비'가 그 주인공이다.
이미 2003년 요리 전문가 이종임 씨와 협력해 '닭갈비' 시리즈를 내놓고 가능성을 확인한 NS홈쇼핑은 탈북자 출신 방송인 전철우 씨와 함께 소비자들이 집에서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는 갈비세트 개발에 돌입했다.
이렇게 탄생한 '전철우의 갈비'는 기존 상품들과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며 '전철우의 국세트' '전철우의 만두' 등 아류 상품들만 줄지어 내놓는 결과만 낳았다.
나정채 NS홈쇼핑 식품담당 MD는 "'전철우의 '갈비'는 효율이 양호한 상품이기는 했지만 소위 '대박' 상품까지는 아니었다"며 "집에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편리함과 연예인을 통한 인지도는 갖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에게 한눈에 쏙 들어오는 차별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이 갈비 상품에 숨을 불어넣은 건 한 MD의 제안이었다. NS홈쇼핑은 당시 MD의 제안으로 갈비를 항아리에 포장해 이름을 '전철우의 항아리 갈비'로 바꾸고 다시 방송에 들어갔다.
항아리라는 독특한 포장 용기에 건강한 이미지까지 더해지며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통을 담당한 NS홈쇼핑과 제품을 만든 정성식품은 확 달라진 소비자 반응에 급히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나 MD는 "2006년 3월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95분 연장 방송에 1만 세트가 전량 매진되는 등 당시 식품 판매고로는 최초와 최고라는 신기록을 동시에 써내려갔다"며 "소비자들의 심리를 간파한 MD의 아이디어를 통해 매출을 반전시킨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당시 100억 원대의 매출 규모를 갖고 있던 정성식품은 한 MD의 아이디어를 통해 현재 1000억 원대 기업으로 훌쩍 성장했다. 이 사례는 MD의 기획을 통해 유통업체와 생산업체 간 동반성장을 이끌어 낸 모범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 MD 가라사대 "가격을 깎아라, 그러면 팔릴 것이다"
가격구조를 바꿔 소비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간 사례도 있다. 한 대형마트 MD는 고객들에게 '기능'은 어필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탓에 판매고가 높지 않았던 상품의 유통구조와 판매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 기록적인 매출로 그 좋을 결과를 이끌어 냈다.
올 4월 롯데마트는 천연 라텍스 매트리스를 시장에 내놨다. 천연 라텍스 매트리스는 시장에서 이미 소비자들을 통해 호평을 받은 상품이었다. 다만 천연 라텍스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탓에 가격대가 낮지 않은 게 흠이었다.
김상훈 롯데마트 수예담당 MD는 "기존 천연 라텍스 매트리스는 제품을 태국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며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가격이 걸림돌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MD는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유통마진을 줄여 원가를 낮출 수 있다면 충분히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 MD는 "원재료를 수입해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했고, 방문 판매가 아닌 셀프 배송을 도입해 유통구조도 개선했다"며 "MD가 현장에서 어떻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전했다.
◆ 기발한 MD가 소비자 호기심을 건드리다…'뱀독 크림' '군대리아' 등
독특한 성분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뱀독크림' (위). 국내 한 소셜커머스 업체는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를 통해 알려진 '군대리아'를 소싱해 인기를 끌었다. / 사진제공= 각 회사GS홈쇼핑의 '뱀독 크림'과 소셜커머스 티몬의 '군대리아'는 MD들이 작정하고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건드린 대표 상품으로 꼽힌다.
주름 개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시네이크(syn-ake·뱀독 유사 펩타이드)' 성분이 함유돼 '뱀독 크림'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상품은 당시 '독'을 얼굴에 바른다는 기발함으로 소피자에게 어필했다.
2010년 9월 첫 방송된 뱀독크림은 전파를 탄지 60분 만에 준비된 수량 6000개가 모두 매진돼 내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사흘 뒤 실시한 두 번째 방송에서도 예정된 방송 시간인 70분 중 40분 만에 준비수량 3000개가 모두 팔려나갔다.
문지현 GS홈쇼핑 뷰티케어팀 MD는 "업계 최초로 선보였던 뱀독 크림은 화장품의 독특한 성분으로 고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며 "TV 홈쇼핑을 넘어 오프라인에까지 영향을 끼쳤던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티몬이 판매했던 '군대리아'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대박'을 일궈낸 사례로 꼽힌다. 군대리아는 '군대'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의 합성어로 연예인들이 실제 군부대에 입대해 벌어지는 생활을 재밌게 담아낸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지난 5월 말부터 1주일 간 티몬이 판매한 '군대리아'는 계속된 매진을 기록, 추가 물량까지 총 2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 이 같은 열풍에 유사 상품인 '김병장 전투식량'과 '불로 전투식량'도 총 1만 개 이상 팔려나가며 군대리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김성현 티몬 식품건강팀 MD는 "TV 프로그램에서 고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제품을 신속한 기획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인 점이 적중했다"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트렌드를 파악해 재빨리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품을 내놓는 일도 MD의 능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