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영업 하던 '乙', 세계금융 '슈퍼甲'됐다
지난 9월 중순,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초청으로 역대(2~5대) 기금운용본부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6대 본부장 후보들의 면접을 며칠 앞둔 이날 최 이사장은 “어떤 인물이 본부장에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원론적인 몇 마디가 오간 뒤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돈을 굴리려면 복(福)이 있어야 합니다. 돈복 말이에요.”

30년 후부터는 기금 적립액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노후 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불려야 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막중한 역할과 한계를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에 따르면 1999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6번째 본부장(기금이사·CIO)으로 홍완선 전 하나은행 부행장(57·사진)이 내정됐다. 신임 홍 본부장은 5일 취임식을 하고, 앞으로 3년간 410조원(8월 말 기준)에 달하는 국민의 노후 자금 운용을 총괄하게 된다.

대구고와 한양대 경제학과를 나온 홍 본부장은 한국투자금융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1년 하나은행 설립 때부터 작년 3월 하나은행 자금시장그룹 총괄 부행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줄곧 하나금융그룹에 몸담은 인물이다. 200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발행하는 등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고, 하나은행에서 자금시장을 총괄하며 외환, 증권운용, 파생상품 등을 두루 섭렵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영업 하던 '乙', 세계금융 '슈퍼甲'됐다
하나알리안츠, 하나대투증권 등에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10년 가까이 법인영업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을(乙)’의 위치에서 ‘슈퍼 갑(甲)’의 자리로 옮기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 산하 기관 연구원 출신을 장관으로 임명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국민연금은 기금 규모로는 전 세계 4위(2012년 말 기준)의 글로벌 ‘큰손’이다. 기금운용본부장이면 골드만삭스 회장 등 내로라하는 금융업계 거물도 전화 한 통화로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지난 9월 초 시작된 이번 본부장 인선에 22명이나 지원한 것도 이런 막강한 ‘파워’를 가진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본부장의 앞길에 놓인 가시밭길도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3년 2561조원을 정점으로 2044년부터 적자가 발생해 적립된 기금만으로는 수급자에게 지급할 돈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말 27.6인 적립배율(보유기금 대비 당해 지급될 연금 급여액)은 2060년 0.3으로 떨어진다. 이는 2060년엔 수급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의 30%만을 국민연금 기금으로 지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연구원 관계자는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그만큼 적자 발생 시점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법 개정을 앞두고 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고 책임투자 원칙을 도입하려고 하는 점도 신임 본부장이 대처해야 할 사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작년 말 기준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6.4%”라며 “보유 주식의 주가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묘수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좌동욱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