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 인물연구에 두 달 파고들었죠"
‘대한민국 연극 섭외 1순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내달 3~17일 공연하는 연극 ‘당통의 죽음’에서 로베스피에르 역을 맡은 배우 윤상화(43)에게 요즘 따라붙는 문구다. 연극계 종사자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자주 관람하는 마니아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한 수식어다. 최근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윤상화는 ‘섭외 1순위’ 얘기를 꺼내자 정작 손사래를 쳤다.

“제가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배우도 아니고, ‘티켓 파워’를 가진 것도 아니잖아요. 최근 몇년간 쉬지 않고 작품을 하긴 했죠. 다 운이 좋아서 그런 거에요.”

그는 지난해 7편의 연극 무대에 섰다. ‘그게 아닌데’ ‘목란언니’ ‘뻘’ ‘햄릿6’ 등 출연작마다 캐릭터 강한 배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중 ‘그게 아닌데’에서 강박 증세에 걸린 코끼리 조련사 역으로 지난해 대한민국연기대상 연기상 등 주요 연기상을 휩쓸었다. 올 상반기에도 국립극단의 ‘칼집속에 아버지’ 등 세편에 출연했다.

“지난 10여년간 주로 또래나 후배들과 작품을 해서 굵직하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연극계 선배들과 선생님들께서 제 작품들을 좋게 보셨는지 2~3년전부터 ‘같이 해보자’는 제의가 많아졌는데 지난해부터 확 몰렸다고 할까요.지난해엔 빠지기 어려운 재공연과 지방 공연도 있어서 심하게 많이 출연한 셈이죠. ”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정치의 주역인 급진파 로베스피에르와 온건파 당통의 날선 논쟁을 통해 혁명의 본질을 묻는 ‘당통의 죽음’은 그가 올하반기 잠재적으로 얘기가 오가던 2~3편의 연극 출연을 포기하고 선택한 작품이다. 독일의 천재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년)의 대표작인데다 예술의전당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가보 톰파를 초청해 만든다는 점에 끌렸다. 이번 공연은 지난 4월 13명의 배역을 뽑는 공개 오디션과 인터뷰에 1000여명의 배우가 몰릴만큼 연극계의 관심이 높았다. 윤상화도 예술의전당에서 연락을 받아 톰파와 인터뷰했다.

“로베스피에르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듣고 기뻤지만 바로 든 생각이 ‘죽겠구나, 괴로운 싸움이 되겠구나’ 였어요. 혁명의 끝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피로 물들이는 가해자의 역할인데요. 관객들이 원치 않는 악역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거든요.”

윤상화는 대학로에서 대표적인 ‘성격파 배우’로 꼽힌다. 인물의 성격을 잘 구축하고 표현한다는 의미다. 그는 연습이 시작되기 전 두달 동안 ‘로베스피에르’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에게 강력하게 다가온 것은 ‘부패할 수 없는 로베스피에르’였다.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어긋나거나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결탁하거나 타협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혁명이 위기에 몰렸을때 여기서 멈춰서는 실패하니 끝을 봐야한다는 그의 논리는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하지만 꼭 ‘단두대’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 이제 연기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로베스피에르와 여전히 싸우고 있어요.”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