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08년 삼성전자의 중요 백라이트유닛(BLU) 협력업체 중 한 곳이 부도가 났다. 갑자기 협력업체가 무너지자 다급해진 삼성전자는 BLU 생산업체를 물색하던 중 파인텍을 찾았다. BLU란 액정표시장치(LCD) 뒤에서 빛을 방출해주는 역할을 하는 광원 장치다. LCD 자체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BLU가 빛을 발생시켜 화면을 보이게 해준다. BLU가 없으면 LCD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그저 ‘검은 상자’일 뿐이다.

“한 달 안에 BLU 200만개를 공급해줄 수 있느냐”는 발주처의 질문에 파인텍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짧게 대답했다. 파인텍은 당시 한 달에 BLU 800만개가량을 만들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업체였다.

파인텍은 여유있게 기한 안에 물량을 납품했다. 이 회사의 하정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때 큰 물량을 제대로 납품한 덕에 우리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발주기업은 이때를 계기로 파인텍에 대한 수주 물량을 차츰 늘려갔다. 2008년 연매출 22억원에 불과했던 파인텍은 올해 매출 1700억원, 순이익 100억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국내 LCD 스마트폰 BLU 20% 납품

파인텍은 국내 LCD용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BLU 물량의 20%를 공급하는 업체다. 특히 파인텍이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 공급하는 BLU 물량은 삼성전자의 LCD 스마트폰 전체 물량의 30%에 육박한다. 월 530만개수준이다. 3.8인치, 3.9인치, 4.5인치, 5인치 등 다양한 크기의 BLU를 공급한다. 삼성전자에 BLU를 납품하는 회사는 파인텍 외에 두 회사밖에 없다.

파인텍이 명실상부 전 세계 스마트폰 1위 회사인 삼성전자의 든든한 파트너가 된 것이다. 삼성이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많이 팔수록 납품업체 파인텍에 돌아오는 수혜도 크다. 삼성은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스마트폰’으로 유명하지만, 전체 휴대폰 생산량의 약 절반가량에 LCD를 채용하고 있다.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시리즈 등 삼성의 프리미엄 전략 스마트폰에는 AMOLED 디스플레이가 적용되지만, 일반 피처폰과 갤럭시 팝, 갤럭시 그랜드, 갤럭시 에이스 등 중·저가 스마트폰에는 LCD를 쓴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4~6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7600만대를 팔아치우며 32.6%의 점유율을 차지, 2위인 애플(3120만대·19.4%)을 저만치 따돌렸다. 지난해 3억9600만대의 휴대폰을 판 데 이어 올해 목표를 5억여대로 잡았다. 이 가운데 스마트폰 물량은 3억5000만대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억5000만대가량이 BLU가 적용되는 LCD 모델이다.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 확대’ 호재

파인텍의 수익성은 향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시장 성장세와 맞물려 있다. 특히 프리미엄 스마트폰보다는 LCD를 적용하는 중·저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중요하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저가 스마트폰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파인텍에 호재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를 맞으면서 제조사들은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북미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회사별 프리미엄 제품의 혁신성에 큰 차이가 없어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폰 평균 판매가격이 올해 1분기 사상 처음 300달러(약 34만60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삼성전자도 갤럭시Y, 갤럭시 에이스 등 보급형 스마트폰 라인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내년부터 삼성전자의 중·저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파인텍의 매출 목표도 크게 뛰었다. 올해 1620억여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파인텍은 내년 매출을 50%가량 늘린 2500억원으로 잡았다.

○신성장 사업에도 도전

파인텍은 BLU 외에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는 사업 개발에도 한창이다. 대표적인 것이 필름 도광판 제조 사업이다. 필름에 빛이 어느 한 쪽에만 쏠리면 화면에 속칭 ‘멍’이 든 것처럼 일부분만 지나치게 하얗게 보인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필름에 오목하고 작은 패턴을 세밀하게 넣는다. 파인텍이 새로 개발한 기술은 금속활자처럼 패턴을 한 번에 찍어내는 기술이다. 그간 이 패턴은 레이저로 넣었다. 레이저로 작업하면 필름 한 개를 작업하는데 4~5분가량이 걸리는 데다, 무늬가 2~3㎛(1㎛는 100만분의 1m)만 틀어져도 불량품 판정을 받게 되는 게 단점이다. 파인텍이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면 작업 시간이 크게 단축돼 생산량이 높아지게 되며, 불량률도 현재보다 낮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리드 필름(PF LGP) 사업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PF LGP란 빛을 반사시켜주는 필름 소재로 BLU의 핵심 소재다. BLU엔 이 필름이 4장 들어갔지만, 파인텍은 3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파인텍은 상장 준비에도 한창이다. 내년 상반기에 상장 청구작업에 들어간 뒤 내년 말께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다. 공모 규모는 200억원 정도로 잡고 있다. 공모자금은 초기 설비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쓰는 한편 필름 신규 사업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하 CFO는 “필름 신규 사업을 위해 영국에서 기계를 자체주문해 들여올 예정”이라며 “공모 자금을 투입하면 부채비율도 100% 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