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면서도 격조 있는 붓끝에 홀리다
진도는 아리랑의 고향이자 수많은 예인을 배출한 풍류의 고장이다. 예부터 진도 사람들은 꽁꽁 맺힌 설움은 곰삭혀 가락으로 풀어내고, 빼어난 자연은 붓끝으로 담아 곁에 걸어 두었다. 또 남녀노소 육자배기 한 자락씩 구수하게 뽑아내는 건 기본이요, 망자의 한과 슬픔조차 노래와 춤사위로 씻어낸다 여겼다.
이처럼 진도 깊숙이 예술혼이 깃들게 된 데는 빼어난 자연과 뼈아픈 역사가 있었다. 진도를 둘러싼 다도해의 비경이 예술적 기질을 품게 했다면, 숱한 전란과 강제 이주 등의 거친 역사는 한을 대물림하며 깊이를 더했다. 또한 이름 높은 유배지였고, 귀양살이 온 사람 중 걸출한 학자가 많았다는 점도 보탬이 됐다. 진도는 먹을거리가 넘치고 자연재해가 적었기에 귀양을 온 이들 역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시와 글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며 시름을 잊었고, 이는 진도 예술이 자리 잡는 데 귀한 자양분이 됐다.
이런 기반 위에 진도 예술을 꽃피운 인물이 소치 허련(1809~1892)이다. 그는 조선시대 명문가 중 하나인 양천 허씨의 후손으로 진도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소치는 추사 김정희의 가르침을 받아 전국적인 명망을 얻었다. ‘소치’라는 아호 역시 추사가 직접 내렸다. 중국 원나라의 4대 화가로 손꼽힌 ‘대치’ 황공망과 견줄 만하다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허련은 임금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헌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스승인 추사가 타계하자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귀향했다. 그리고는 진도의 진산 첨찰산 아래 화실 겸 거처인 운림산방을 짓고 작품 활동을 펼치며 한국 남종화의 맥을 형성했다. 남종화는 북종화에 대비되는 화파로, 장식적인 묘사를 지양하고 자연의 내적 미감을 중시한다. 기교보다 정신을 앞세우는 화풍이다.
운림산방(雲林山房·061-543-0088)은 바로 그런 남종화의 산실이다. 소치 허련에서 시작해 미산 허형,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남종화 3대 뿌리가 모두 이곳 운림산방을 통해 뻗어 나갔다.
소치가 떠난 운림산방은 스스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당시의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첨찰산 자락과 산방,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지며 그윽한 수묵담채화를 완성하고, 연못 한가운데선 소치가 손수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운치를 더한다. 때로는 운림산방이라는 이름처럼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 하니, 아마도 소치가 남긴 최고의 화폭은 운림산방이 아닐까 싶다. 운림산방 뒤편에는 허련의 화상을 모시고 있는 운림사가, 오른쪽에는 소치기념관이 있다. 소치기념관에선 허련 이래로 새로운 남화의 화풍을 창출해낸 소치 집안의 작품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서예를 만들어낸 소전 손재형의 향기
소치 허련과 함께 진도에서 붓끝으로 이름을 높인 예인으로는 소전 손재형(1903~1981)을 빼놓을 수 없다.
소전은 추사의 뒤를 잇는 20세기 서예의 거장이다. 특히 중국의 ‘서법’, 일본의 ‘서도’와는 다른 ‘서예’라는 말을 직접 만들어내고 이를 정착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소전은 특유의 율동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필치를 완성하며 자신만의 서체인 소전체를 만들었다. 소전체는 추사체만큼 익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만큼 대중에 친숙한 글씨다. 1970년대 국정교과서 표지에 적혀 있던 ‘국어’ ‘수학’ 등의 과목 이름과 ‘샘터’ ‘현대문학(現代文學)’ 등의 잡지 표제, 법전 표제 등이 모두 소전의 글씨다.
그래도 소전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소전미술관(061-544-3401)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소전미술관에는 소전의 서예 작품과 동양화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은 모두 4개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제1전시실에는 소전의 초기 작품과 낙관, 안경, 벼루, 붓 등 유품이 있고, 2전시실에는 소전의 사군자 그림과 풀과 벌레를 묘사한 초충도(草蟲圖) 등이, 3전시실에는 원숙미 풍기는 장년 시절 작품이 걸려있다. 기획전시실로 활용되는 제4전시실에는 장전 하남호, 금봉 박행보 등 소전의 제자들과 의제 허백련 선생 등 거장의 작품이 교대로 전시된다.(성인 15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
고샅까지 번진 붓의 숨결
진도의 예술혼은 고샅 끝에서도 찬란하게 피어났다. 그중 백미는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를 들여 만든 장전미술관(061-543-0777). 본래는 하남호 선생의 ‘남’자와 부인 곽순진 여사의 ‘진’을 합하여 남진미술관이라 불렸으나, 최근 선생의 아호를 붙여 장전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장전미술관은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주택가 안쪽에 자리했다. 솟을대문을 지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손때 묻은 조각품이 널린 아담한 정원과 예스러운 한옥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3층짜리 본관이, 오른쪽엔 1층 규모의 별관이 들어서 있다.
본관에는 입이 떡 벌어지는 작품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추사 김정희 ‘명월송간조’, 다산 정약용 ‘홍매도’, 이당 김은호의 ‘미인도’를 비롯해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시첩과 율곡 이이의 간찰, 한석봉·송시열·김옥균의 글씨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별관은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도기가 차지했다.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 국보급이 수두룩하다. 작품 수에 비해 공간이 비좁아 전시라기보다는 한곳에 모아 둔 느낌이다.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 휴관, 성인 2000원·학생 1000원)
나절로미술관(061-543-8841)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이상은 화백이 숨이 넘어갈 듯 퇴락한 폐교를 사들이고 정성껏 가꿔 문을 연 미술관이다. 나절로는 ‘스스로 흥에 겨워 산다’는 의미로 화가의 아호이기도 하다.
화랑으로 얼굴을 바꾼 학교 건물에는 나절로 화백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다. 20년 전만 해도 교실이고 복도였을 공간마다 학생 대신 화가의 자식 같은 작품들이 모여 있다. 주로 돌가루에 색을 입혀 그리는 석화인데,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재료만 사용하여 하나같이 따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전시관 뒤편 황토방은 찻집이다. 앞에는 아기자기한 연못도 있다. 이 역시 이상은 화백이 손수 만들고 가꾼 작품이다. 매년 5월에는 운동장 가득 새하얀 마가렛꽃이 피어 장관을 이룬다. 꽃이 진 운동장은 가족캠핑장으로 운영된다. 학교 관사로 쓰던 건물에서는 민박도 가능하다.(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성인 2000원·학생 1000원)
박은경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기자 eungong@knto.or.kr
여행팁
진도행 고속버스는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매일 4회(오전 7시35분~오후 4시35분) 운행하며 약 5시간20분 걸린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는 매일 2회(오전 9시10분, 오후 4시20분) 출발하고 약 5시간40분 걸린다. 승용차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을 타고 영산호 하구둑에서 영암방조제와 금호방조제를 넘어 77번 국도를 타면 된다. 전라우수영을 지나 진도대교를 넘으면 진도에 도착한다.
임회면 죽림리 해안가에 자리한 작은갤러리(061-544-0071)는 같이 들러보면 좋은 곳이다. 작은갤러리는 우초 박병락 선생이 그림 작업을 하면서 운영하는 갤러리이자 음식점이다. 이곳에 걸린 그의 작품엔 진도가 산다. 진한 먹은 그의 붓끝을 따라 강계갯벌이 되기도 하고 동석산의 우람한 암봉이 되기도 한다. 또 붉은 물감은 낙조가 되어 화선지를 뜨겁게 물들인다. 음식도 제법 훌륭하다. 맛이 좋아 음식점으로만 알고 찾는 손님이 더 많다. 대표 메뉴는 수제비와 파전. 노란 빛깔이 고운 울금 막걸리도 놓치면 서운하다.
가을의 절정, 예향 진도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진도문화예술제가 오는 26일부터 11월3일까지 진도 일원에서 열린다. 씻김굿, 다시래기, 강강술래 등 무형문화재 공연을 비롯해 진도국화전시회, 관광진도 사진전시회, 진도개 공연, 서화체험 등 진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진도군청 관광문화과 (061)544-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