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사업에 회사 운명을 걸겠다.”

2006년 6월 오사카에서 열린 파나소닉 주주총회. 나카무라 구니오 신임 회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후 2100억엔을 투자, 아마가사키시에 PDP 제3공장을 신설하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2010년 완공됐다. 하지만 2011년 10월 가동이 중단됐다. 예상과 달리 PDP 수요가 급속히 줄어들어서다. 파나소닉은 이제 3공장뿐 아니라 내년까지 모든 PDP 사업을 접는다.

한때 액정표시장치(LCD)와 TV 시장을 양분하던 PDP가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

2010년 이후 값이 싼 발광다이오드(LED)를 백라이트로 쓴 저렴한 LCD TV가 쏟아지며 경쟁력을 잃어서다. ‘크고 저렴한 TV’란 명성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1993년 처음 시장에 나온 PDP는 ‘영욕의 20년’을 마감하고 3~4년 후엔 완전히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DP, 저가 LED에 밀려 패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파나소닉이 내년 3월 이전에 아마가사키에 있는 PDP 공장을 폐쇄하고 이를 매각한다고 보도했다. PDP를 주력으로 삼던 TV 사업부문이 최근 2개 회계연도를 합해 1조5000억엔(16조6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자, 사업을 아예 팔아버리기로 한 것이다. 파나소닉은 1997년 PDP를 내놓은 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세계 PDP TV 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를 지켰었다.

PDP TV는 1993년 NEC 후지쓰 등이 첫선을 보인 이래 2000년대 중반까지 TV 시장 패권을 놓고 LCD와 치열하게 경쟁했다. 색감, 명암비가 좋고 LCD에 비해 대형 패널을 싸게 만들 수 있어 40인치 이상 대형에선 PDP가 최고 90% 넘게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LCD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삼성전자 샤프 LG전자 등은 밝기와 소비전력, 활용도(모니터, 스마트폰 등)에서 앞선 LCD가 PDP를 이길 것으로 보고 대량 투자, 싼값에 대형 패널을 만들어냈다. 2010년에 나온 LED TV는 결정타를 날렸다. LCD TV 값은 뚝 떨어졌고 PDP TV는 2010년 190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빠른 속도로 쪼그라졌다. ‘규모의 경제’에서 뒤지자 공급망이 급격히 축소됐고,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기술 발전도 LCD에 뒤처진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004년 세계 TV 시장의 25%(출하량 기준)를 차지했던 PDP는 작년 6%로 추락했다. 작년 1360만대였던 판매 대수는 올해 1010만대, 내년에는 800만대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까지 가세하고 있어 2016~2018년엔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당분간 삼성, LG만 남을 듯

PDP가 LCD와의 전쟁에서 패하며 PDP를 고집했던 회사들은 대부분 큰 손해를 보고 TV 시장에서 퇴출됐다. 2008년 사업을 접은 히타치, 파이오니아, 그리고 파나소닉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PDP에도 투자했으나, 시장 흐름을 보고 LCD로 빠르게 전환, TV 시장의 승자가 됐다. 파나소닉이 사업을 접으면 PDP TV를 만드는 회사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국 창훙 3개사로 압축된다. 올 상반기 PDP TV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1위(45.2%), LG전자가 2위(22.2%)였다. 4위 창훙은 13.9%였다.

당분간 삼성, LG전자는 파나소닉 철수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삼성과 LG는 시장은 축소되고 있지만, 점유율은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 1위인 삼성은 점유율이 2009년 25.3%에서 올 상반기 45.2%까지 치솟았다. 다만 시장 축소로 2010~2012년까지는 매출이 유지됐지만, 올 상반기 20%가량 줄었다. 이에 따라 양사는 신규 투자 없이, 시장이 어느 정도 유지될 때까지만 생산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PDP 패널을 만드는 삼성SDI 관계자는 “현재 PDP 패널 사업은 손익분기점(BEP) 수준”이라며 “앞으로 시장 추이를 봐서 생산라인을 다른 라인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도 최근 기업설명회(IR)에서 “PDP 라인은 비용상각이 다 끝났고,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돈을 버는 시점까지는 사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경북 구미에 있는 A2라인을 없애고 A3라인 하나만 유지하고 있다. A1라인은 이미 2008년 태양전지 생산 라인으로 전환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