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년 - 기로에 선 신흥국…20억 시장을 가다] 열악한 인프라에도 여전히 기회의 땅

자카르타 시내에서 서쪽으로 94㎞를 달려 칠레곤에 다다르자 뿌연 흙먼지 사이로 ‘크라카타우포스코’라는 간판이 나타났다. 크라카타우포스코는 포스코가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회사인 크라카타우스틸과 70 대 30의 투자비율로 합작한 법인. 3년 전만 해도 자바섬의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던 칠레곤에는 현재 최첨단 종합제철소(사진)가 들어섰다. 12월 1단계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28일 둘러본 제철소 건설 현장에는 화물차와 건설장비가 분주하게 오갔고, 한쪽에서는 기술인력들이 기술 전수를 받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제선과 제강, 압연 등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경준 포스코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인도네시아는 철광석이 22억t, 석탄은 934억t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잠재 매장량을 자랑한다”며 “후판 생산량 150만t 중 70%는 인도네시아 내수시장에, 나머지는 인근 국가에 수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인프라와 후진적 관료제도라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올해만 해도 수십 개의 회사가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했다. 현지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정부의 구체적인 개발계획과 투자유치 노력 △풍부한 자원 △탄탄한 내수시장 등을 매력으로 꼽았다.

FDI가 총 투자의 70% 차지

[창간 49년 - 기로에 선 신흥국…20억 시장을 가다] 열악한 인프라에도 여전히 기회의 땅
한국타이어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웨스트 자바 베카시 공단에 터를 잡았다. 프랑스 미쉐린 타이어는 현지 석유화학 기업과 합작해 합성고무 공장을 세우고 있다. 일본 샤프전자도 최근 공장을 증설했고, 2008년 철수했던 제너럴모터스(GM)는 인도네시아로 복귀를 선언했다. 애플에 휴대폰을 납품하는 대만 폭스콘은 중국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옮겨 1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인 러시아 루샬은 서부 칼리만탄에 알루미늄 생산을 위한 보크사이트 정제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경제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총투자의 70%를 차지하는 주요 성장동력이다. 인도네시아 FDI는 2011년 192억8000만달러로 전년도보다 18.9%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46억달러로 다시 26% 늘었다. 3년간 128%나 증가한 것.

대통령 직속기관인 인도네시아투자조정청(BKPM)의 파라 라트나데위 인드리아니 부청장은 “한국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 19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싱가포르와 일본에 이어 3위 투자국에 올랐다”며 “인프라와 에너지, 기술 중심의 농업 등은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도네시아 내외국인 투자를 총괄하는 BKPM은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투자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15년 경제개발계획+세제 혜택 등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경제개발 마스터플랜(MP3EI)을 추진하고 있다. MP3EI는 자원 의존 경제를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고부가가치 경제로 전환해 202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4조달러, 1인당 소득 1만5000달러를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정부는 이를 위해 1만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국토를 6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주력 산업 육성과 인프라 구축에 445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인프라투자공사 자카르타 본사에서 만난 엠마 스리 마티니 대표는 “인도네시아 경제가 균형을 맞추려면 인프라와 제조업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것에 지도층 모두 공감하고 있다”며 “2004년부터 멈춰선 모노레일 건설과 수력발전, 바탐 지역 에너지 프로젝트 등이 내년 시작되면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탄탄한 내수시장은 인도네시아 경제의 방패다. 국내 소비가 GDP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내수시장 중심의 경제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총액 비중을 나타내는 대외무역의존도는 45%에 불과하다. 동남아시아 10개국 평균인 109.7%와 싱가포르(298.3%), 베트남(161.9%) 등에 비해 훨씬 낮다. 미국 유럽의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기침체가 닥쳐도 견실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임금 상승 등 걸림돌도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함께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면서 올 들어서만 최저임금이 40% 이상 올랐다. 정부의 자원 및 자국 산업 육성·보호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인프라 등 물류환경 개선과 복잡한 행정절차도 숙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노동계와 정부의 이런 변화가 저임금과 세제혜택 등으로 단기간 이익 실현을 노렸던 외국 자본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다. 단기적 이익 실현보다 상생 협력을 통한 중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라는 주문이다. 송유황 KOTRA 자카르타 무역관장은 “지리적 이점과 인구 규모, 자원 매장량을 봤을 때 중국 이후 이만한 시장이 없다”며 “이제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메이드 포 인도네시아’로 기업의 투자 전략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자카르타=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