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자카르타의 출근길 러시아워가 시작되는 아침 7시30분. 시청과 은행이 몰린 도심으로 통하는 젠데랄 수디만 도로 위에는 수십 명이 긴 줄을 늘어섰다.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여성부터 열 살도 채 안돼 보이는 아이까지 매연으로 가득한 길가에 서거나 아예 차도에 내려와 손가락으로 숫자 1 또는 2를 만들어 운전자들을 향해 흔들고 있었다.

이들은 ‘조끼’라고 불리는 합승 아르바이트족이다. 4년 전 인도네시아 정부가 출퇴근길 정체 현상을 막아보려고 만든 ‘스리인원(3 in 1)’ 정책의 부산물이다. ‘스리인원’은 오전 7~10시, 오후 4~7시까지 하루 6시간 동안 상습 정체구간을 통과하는 차에 최소 3인 이상이 탑승토록 하는 의무규정이다. 이 법규를 어기면 50만루피아(약 5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운전기사와 둘만 타고 있던 터라 차에 조끼를 태워봤다.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자누엘라(15)는 “구간에 따라 한 번에 1만~3만루피아(1000~3000원)를 받는데 운 좋으면 하루에 10만루피아(1만원)를 받으니 꽤 괜찮은 수입”이라고 말했다.

‘2030년 세계 7대 경제대국’. 맥킨지와 씨티그룹 등이 인도네시아에 대해 내놓은 전망이다. 인도네시아는 넥스트11, 비스타(VISTA)등 브릭스(BRICS) 이후 떠오르는 신흥국을 지칭하는 모든 용어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지난 6년간(2007년 제외) 경제성장률 6%대를 달성하며 ‘포스트차이나’로 가장 먼저 손꼽혀온 나라다. 하지만 열악한 인프라 사정과 높은 부패지수(118)는 세계 7대 경제대국의 꿈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꼽힌다.

도로·수도 등 인프라 지옥

인도네시아의 취약한 인프라는 상상을 초월한다. 총면적 190만4000㎢(한반도의 9배), 1만7000개 섬으로 이뤄진 나라에 제대로 뚫린 고속도로는 300㎞가 채 안된다. 그마저도 인도네시아의 중심인 자바섬(12만6799㎢)에만 몰려 있다. 항만시설도 부실해 기업의 물류비용은 총생산비의 30%가 든다. 섬과 섬 간 물류 이동기간은 20~30일이 걸리기 일쑤다. 자카르타 도심에는 건널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낡은 육교가 드문드문 서 있고 육교 위에는 사람과 오토바이가 함께 건너다닌다. 자카르타에 있는 인프라투자공사(PT.SMI)에서 만난 아스트리드 스와스티카 기업전략부문 대표는 “2015년이면 자카르타는 도시 전체가 주차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며 “일부에서는 자동차 대신 헬기를 구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말했다.

도로뿐만 아니다. 하루 숙박비가 30만원 이상인 5성급 호텔에서도 “수돗물로 양치를 하지 말라”며 생수병을 건넸다. 배관이 50년 이상 됐기 때문에 자칫 장티푸스 등 각종 수인성 질환에 감염되기 쉬워서다. 초호화 쇼핑몰의 뒤편에는 정비되지 않은 하수도에 지역 주민이 흘려보낸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악취를 풍기며 뒤엉켜 있었다. 의료와 기초교육 수준도 148개국 중 70위에 머물러 있다.

자원부국의 저주? 부실한 제조업

인도네시아 경제는 그동안 자원부국과 외국인 투자라는 두 축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요소에만 의존한 경제구조는 허약한 뿌리를 드러냈다.

인도네시아의 지난 2분기 경상수지 적자는 98억달러(GDP 대비 4.4%)까지 늘었다. 인도네시아는 팜오일 매장량 1위, 발전용 석탄 수출국 1위, 천연가스 수출국 8위의 자원 부국이다. 수출품목 상위 10개 중 9개가 모두 천연자원이다. 자원만 팔아 먹고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조업 발전은 더뎠다. 원자재 가격이 호황일 때는 좋았지만 최근 이 ‘슈퍼사이클’이 끝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석탄, 구리 등 주요 수출품 가격이 1년 새 평균 약 20% 폭락했고 경상수지 적자폭은 계속 커졌다.

경상수지 적자로 경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예고하자 외국인 투자자는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루피아화는 지난 5월 이후 현재까지 약 16% 하락했고, 자카르타종합지수는 5월 최고점 대비 20%나 떨어졌다. 아세안·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A)에서 만난 디오니시우스 나르족 박사는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끝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졌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부가 각종 보조금 정책을 거둬들이기 힘든 만큼 올해 경제성장률은 6% 이하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유가보조금’=경제의 적

인도네시아를 신흥국 위기설의 주범으로, 수도 자카르타를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 도시로 만든 건 서민생활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운 ‘유가보조금’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유가보조금으로 220억달러를 썼다. 정부 재정의 20%, 국내총생산(GDP)의 3.8%를 차지한다. 유가보조금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집권기간(1967~1998)에 도입된 정책으로 국제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하는 사회복지제도다. 휘발유 가격은 현재 L당 6500루피아(약 600원), 경유는 4500루피아(약 410원) 정도로 아시아 최저가다. 이 가격도 지난 6월 정부가 보조금을 22~44% 축소한 이후의 가격이다.

석유가 많이 나올 땐 상관 없었지만 2004년 인도네시아 석유수입량이 수출량을 초과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유가보조금은 무역불균형의 주요 원인이 됐고, 인프라와 교육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가로막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더 큰 문제는 유가보조금 혜택이 부유층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은디암 디옵 세계은행 인도네시아 담당 수석연구원은 “유가보조금을 통해 자동차를 소유한 부유층은 월 100달러, 오토바이를 소유한 중산층은 월 10달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월 1달러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료와 경제학자들은 유가보조금 폐지를 주장하지만 포퓰리즘 정책에 길들여진 다수의 국민과 정치인들은 제도 유지를 주장하며 시시때때로 국회를 점령하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인다. 인도네시아국립과학연구원(LIPI)에서 만난 시와게 다르마 네가라 박사(경제학)는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의 포퓰리즘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예산의 20%는 교육비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실업수당이나 각종 보조금에 쓰여 인프라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카르타=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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