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리힐즈 골프클럽 회원들이 지난 23일 강원도 춘천의 더플레이어스GC에서 월례회를 시작하기 전 연습그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기열 기자
비버리힐즈 골프클럽 회원들이 지난 23일 강원도 춘천의 더플레이어스GC에서 월례회를 시작하기 전 연습그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기열 기자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의 더플레이어스GC. 안개의 도시답게 오전 7시쯤 초록색 필드 위를 자욱한 안개가 뒤덮고 있다. 레이크코스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안개 속으로 드라이버 샷을 날린다. 두 번째 샷을 위해 페어웨이로 걸어가는 동안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짙푸른 산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다.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나무가 ‘비버리힐즈 골프클럽(이하 비즈클럽)’ 회원들에게 초가을 라운드를 선사했다.

비즈클럽은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를 넘어 함께 골프를 즐기는 온라인 동호회다. 비즈클럽의 월례회가 열린 더플레이어스GC를 지난 23일 찾았다.

비즈클럽의 키워드는 배려와 양보다. 골프를 좋아하는 1965년생 뱀띠 동갑내기 20여명이 모여 2010년 인터넷 카페를 만들면서 시작된 비즈클럽은 현재 회원수 4600명으로 성장했다. 4년째 동호회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확고한 원칙이 있어서다. 아웃도어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전민식 비즈클럽 매니저(48)는 “배려하는 마음과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편안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며 “회원들이 나이가 많건 적건 서로를 존중하면서 활동하다 보니 신구(新舊)의 조화가 잘 된다”고 말했다.

드라이버로 최장 300야드를 날리는 비즈클럽의 장타자 이석준 씨(37)도 “서로 예의를 제대로 지키면서 연장자와 젊은 회원이 가족처럼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동호회 이름엔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가인 비벌리힐스처럼 품격있는 골프를 치자는 뜻도 담겨 있다. 비즈클럽에서 사진을 담당하고 있는 한상범 씨(38)는 “내기를 거의 안 하고 신사의 스포츠로써 골프를 즐기는 회원들이 많다”고 했다.

이날 월례회를 앞두고 동호회 카페에 ‘룰, 매너, 티오프시간를 반드시 준수합시다’라는 공지글이 뜰 정도로 비즈클럽의 회원들은 기본에 충실한 골프를 중시한다. 김진 비즈클럽 경기위원장(43)은 “골프의 기본 룰과 예절을 제대로 지키는 게 중요하다”며 “월례회마다 이를 강조한다”고 했다. 골프를 처음 배우는 초보회원에게도 싱글 플레이어인 회원이 한 조에서 플레이하며 기본 룰과 예절을 가르친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고 골프를 치는 아마추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보니 이들이 특별해 보이는 것이다.

이날 월례회에는 5팀 20명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는 참가자가 특히 눈에 띄었다. 어머니 최성희 씨(50)는 “골프 잘 치는 친구들과 실력을 맞추기 위해 2년여 전에 비즈클럽에 가입했다”며 “여기서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딸과 함께 하고 싶어 데려 왔다”고 말했다. 딸 장서현 씨(28)는 지난달 비즈클럽의 월례회 때 머리를 올렸다. 이날이 두 번째 실전 라운딩이니 비즈클럽을 통해 골프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장씨는 “초보라서 많이 긴장했는데 엄마와 함께 하다보니 편하게 칠 수 있었다”고 했다. 최씨는 “딸과 함께 골프라는 취미를 공유할 수 있어 좋다. 친구처럼 연습장도 함께 가면서 대화도 많이 하게 돼 더욱 좋다”며 흡족해했다.

비즈클럽에선 초보자들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도 많다. 매주 수요일엔 서울 답십리동의 힐스포파크 골프연습장에서 연습모임을 갖는다. 초보자들에게는 싱글 핸디캡 회원들이 스윙의 기본을 가르쳐 준다. 월례회 때에는 필드에서 싱글 회원들에게 실전 레슨을 받는다. 이날 두 번째로 연습장을 찾았다는 장씨도 “티샷이 해저드에 빠졌을 때 더 치고 싶었는데 매니저가 원칙대로 쳐야 한다고 해서 처음엔 아쉬웠다. 18홀을 끝내고 보니 골프를 제대로 배운 것 같아 기분 좋다”고 했다.

춘천=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