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의 계절…실세 정무위·산통위 '책값' 두둑히 챙겼다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민주당 A의원의 출판기념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행사가 열리기 30분 전부터 대회의실과 소회의실 사이 복도는 수백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늘어선 긴 줄의 끝에는 수백 권의 책이 쌓여 있고 한쪽에는 책값을 넣는 ‘모금함’도 설치돼 있었다. “많이 하시려면(후원금을 많이 내려면) 저쪽으로 가십시오”라는 말도 오갔다.

매년 9월이면 국회에도 ‘독서의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정기국회가 시동조차 제대로 걸지 못하고 있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 들어 국회에서만 벌써 열 번의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실세 상임위 정무위 ‘흥행’

한국경제신문이 국회사무처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19대 국회 개원 이후 15일 현재까지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35회다. 이 중 15회가 9월에 열려 이른바 출판기념회 ‘성수기’를 이뤘다. 9월에 출판기념회가 몰리는 이유는 투자 대비 수익이 높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는 의원들이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9월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를 앞두고 정부부처, 민간 기업, 공기업 등 이해 관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셈법이 깔렸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상임위원회별 출판기념회 개최 횟수도 차이를 보였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을 소관 부처로 둔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연 출판기념회가 8회로 상임위 중 가장 많았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일감 몰아주기,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민감한 현안이 몰려 있는 정무위가 출판기념회에서도 흥행몰이를 한 셈이다. 기업 관련 정책을 많이 다루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6회로 그 뒤를 이었다.

○책값 최대 100만원

책값은 ‘거래 관행’처럼 정해져 있다. 의원들끼리는 보통 10만원, 소속 정당이 같고 친분이 있으면 30만원가량을 낸다. 국감과 예산심의에 대비하는 관련 부처 장관, 차관, 실장(1급)들은 ‘눈도장’을 찍기 위해 각각 50만원, 30만원, 10만원 정도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공공기관장은 장관과 비슷한 50만원 정도를 통상 책값으로 후원한다. 기업들도 빠질 수 없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소 50만원에서 100만원을 책값으로 낸다”며 “‘실세’에겐 얼마나 내는지 서로 비밀에 부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쓴 책들은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자서전 형태가 대부분이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의 한 보좌관은 “어려움을 뚫고 성공한 얘기를 담은 ‘가난 마케팅’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부분 비슷비슷한 내용이어서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했다.

○반복되는 ‘편법’ 모금 논란

현행 정치자금법은 출판기념회에서 거둔 수익 관련 기록을 제출해야 할 의무나 그 한도를 정하고 있지 않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모금함을 국회의원이 직접 들고 가기 때문에 누가 얼마를 냈는지, 또 얼마나 모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2004년 3월 통과된 소위 ‘오세훈법’에 따르면 정치인의 후원금 모금 한도는 연간 1억5000만원이다. 기업 등의 후원금 기탁도 금지돼 있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이 법안의 예외 적용을 받는다.

정치권에선 출판기념회를 통한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을 아예 수면 위로 투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출판기념회는) 편법이다. 그러지 말고 후원회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금 한도 현실화와 더불어 이해 당사자들이 로비성 돈을 내는 것을 막기 위해 책값을 통상적인 축의금 수준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