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제정돼 2015년부터 시행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이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등 해외기업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 것은 그만큼 부작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화평법이 벤치마킹한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보다 규제 강도가 강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의 중소제조업체들이 공멸의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화평법은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한 뒤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고 등록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을 연간 1 이상, 신규 화학물질은 용량에 상관없이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업체는 정부에 해당 물질의 유해성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 법은 화학물질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화학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외국계 기업들이 중점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화평법의 제재 수위가 다른 나라의 관련 법보다 높아 무역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대목이다. 특히 신규 화학물질은 용량에 상관없이 모두 등록해야 한다는 부분이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유럽의 REACH는 신규 화학 물질도 연간 1 이상만 정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국내 유통되는 대부분 신규 화학 물질은 외국계 기업이 제조·판매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당초 무역 마찰을 우려해 지난해 법안을 발의할 때 신규 화학물질은 연간 1 이상만 등록하도록 했었다. 하지만 4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규 화학물질의 규제 범위가 용량에 상관없이 모두 정부에 보고하도록 강화됐다.

현재 국내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비용 증가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화학물질 등록 시 판매업체들은 건당 최소 2955만원에서 최대 4억9660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 비용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제조업체들에 일정 부분 전가돼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환경부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등록유예기간을 주고 동일한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제조·수입업자가 공동으로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똑같은 화학물질을 수입하는 5개 업체가 정부에 자료를 공동 제출하기 때문에 부담이 5분의 1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화평법의 부작용을 충분히 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 국내외 기업들의 중론이다.

일각에선 제조업체의 영업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 수입·제조업체가 반도체 제조업체에 화학물질을 판매했는데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반도체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화학물질 성분, 용량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