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언 발머 후임 안갯속…내부 발탁 가능성 커

14년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스티브 발머가 1년 내에 은퇴하겠다고 23일(현지시간) 밝히면서 차기 CEO 선정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은 후보를 사내외에서 널리 물색하는 시작 단계이므로 과연 누가 발머의 후임이 될지 섣불리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발머의 은퇴 발표와 동시에 MS가 밝힌 차기 CEO의 요건을 보면 이 회사가 어떤 부류의 인물을 찾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발머는 은퇴를 발표하면서 MS가 기기·서비스 회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만큼 "이런 새 방향을 위해 장기간 재임할 CEO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기 CEO 선정을 위한 이사회 산하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 수석 사외이사 존 톰슨도 기기·서비스 회사로의 변모가 성공해야 한다며 "회사의 (현재) 고위 임원단과 협력해 회사의 진로를 그리면서 실행에 옮길 CEO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S는 내·외부 인사를 모두 차기 CEO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이런 언급을 보면 MS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순수 외부 인사'가 선정될 개연성은 매우 낮다.

즉 MS의 전·현직 고위 임원 중 차기 CEO가 선정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개발자의, 개발자에 의한, 개발자를 위한" 기업이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중요시하는 MS의 기업 문화를 고려해 보면, 이른바 '외부 경영 전문가'가 MS의 차기 CEO가 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현직 고위 임원단은 발머를 제외하면 13명인데, 만약 이 중 차기 CEO가 정해진다면 재무·인사·광고·마케팅 등 전문분야 임원이나 최근에 영입된 임원보다는, 오랫동안 제품 개발을 담당하거나 경영 전반을 관리해 온 임원 중 하나가 발탁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보인다.

현직 중 이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기기(디바이스) 부문장인 줄리 라슨-그린(51) 수석 부사장, 운영체제(OS) 부문장인 테리 마이어슨(41) 수석 부사장, 월마트 출신으로 2005년부터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온 케빈 터너(49) 등이 거론된다.

문제는 세계 IT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인 MS CEO직에 맞는 카리스마와 비전, 실적을 가진 인물을 MS의 현직 고위 임원 중에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독창적인 비전과 추진력으로 뛰어난 실적을 거둬 차기 CEO가 될 가능성이 거론되던 MS 고위 임원들이 특별한 잘못 없이 물러나는 경우가 잦았던 탓이다.

이들이 떠나기 전후에 발머와 마찰을 일으켰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이 점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1인자 게이츠, 2인자 발머' 체제로 운영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발머는 CEO로 재직하면서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디바이스 사업 부문장으로 X박스 사업 등을 이끈 로비 바흐(52), 바흐와 함께 일하면서 MS의 차세대 사업과 사용자 경험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제이 알라드(44), 소프트웨어 부문장 출신으로 '소프트웨어계의 현인'이라고 불리던 레이 오지(58) 등이 2010년 MS를 떠났고, 윈도 부문 사장이던 스티브 시노프스키(48)도 작년 12월에 물러났다.

만약 '외부'에서 인물을 찾는다면 이들이 차기 CEO 후보군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지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점이, 시노프스키는 재직 당시 타 사업부문과 마찰을 심하게 일으켰던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차기 CEO는 장기간 재직하면서 디바이스·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회사의 앞날을 설계해야 하므로 나이가 적고 신사업에 대한 비전을 입증한 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리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전·현직 MS 임원들만 놓고 봤을 때이고, 특별위원회의 기류에 따라 전혀 의외의 외부 인사나 주목받지 못하던 내부 인물이 발탁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화섭 특파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