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서 빠진 자금, 美·日로 대거 유입
글로벌 투자자금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경기 회복 기운이 감도는 미국과 일본 증시엔 외국인 투자 자금이 넘쳐난다. 반면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 금융시장은 해외 자금 이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성장 속도가 둔화된 데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신흥국 시장의 매력이 크게 떨어지는 양상이다.

◆선진국 증시로 몰리는 해외 자본

해외 투자 자금이 최근 들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은 일본이다.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는 꾸준하다. 지난 1~7월 중 도쿄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순매수한 금액은 총 9조엔(약 102조원). 작년 연간 순매수 규모의 3배에 달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달 첫째 주에 1000억엔가량의 해외 투자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기 차익 실현에 나선 헤지펀드”라며 “일본 증시에 대한 외국인들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서는 중장기 투자 성향을 띤 해외 공적 연기금도 일본 증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로 일본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적기금 중 하나인 FRR은 지난 6월 4억유로(약 5944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일본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고, 네덜란드 연기금은 지난달부터 20억엔 이상의 자금을 들여 일본 중소형주를 쓸어담고 있다.

미국 증시로의 자금 이동도 다시 빨라지고 있다. 펀드리서치업체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장기 뮤추얼펀드에는 159억달러가 순유입됐고, 이 중 79억달러가 주식형펀드로 이동했다. 조기 출구전략 가능성을 우려해 채권시장에서 이탈했던 자금도 금리 상승이 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판단에 따라 다시 유턴하는 분위기다. 파생상품 부동산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대안투자펀드로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대안투자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590억달러. 지난해 전체 유입 금액을 웃도는 수준이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주식 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금리+α’의 수익률을 찾아 대안투자펀드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풀 죽은 신흥국 시장

신흥국 금융시장 중 직격탄을 맞은 나라는 인도다. 인도 루피화 가치는 19일 장중 달러당 62.82루피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루피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2% 하락했다. 물가는 상승하고 성장은 지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진 탓이다. 인도의 작년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경제성장률은 10년 만의 최저치인 5.0%에 머문 반면 물가는 7.8% 상승했다. 증시도 찬밥이다. 인도 뭄바이 증시에선 지난 6월 이후 한 달 반 동안 해외 투자자들이 26억달러를 빼 갔다.

브라질과 중국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브라질 증시 대표 지수인 보베스파지수는 올 들어서만 20% 이상 하락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두 자릿수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28개 신흥국으로 구성된 MSCI지수는 올 들어 9.2%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신흥국의 경제 구조적 문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수년간 성장세가 예전처럼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이미아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