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부양 꺼리니…배우자 상속분 상향 '다시 수면위로'
서울 서초동에 사는 P씨는 2010년 남편이 사망하면서 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남겼다. 집을 팔아 전세 아파트를 얻은 뒤 남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P씨의 바람이었다.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4남매가 유산의 일부를 받고 싶어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현행 민법에서 정한 상속분대로 나누면 P씨에게 돌아올 몫은 2억1600만원(27%)에 불과했다. 결국 장남이 어머니를 모신다는 조건으로 딸 셋은 자신들의 상속분을 어머니에게 몰아줬다. 그러나 장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세 딸은 상속분을 포기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모실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배우자보다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어차피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평균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지만 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젊은 층이 늘면서 고령층의 빈곤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법무부가 민법 개정을 통해 배우자가 가져갈 수 있는 상속 재산을 50% 이상으로 대폭 높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우자 상속재산 대폭 높아진다

상속분이란 각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해 가지는 승계비율을 말한다. 민법 1009조에서는 상속분을 ‘배우자 1.5 대 자녀 각 1’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상속재산은 고인(故人)의 유언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원칙이다. 유언이 없거나 상속인 중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이때부터는 상속분이 중요 잣대가 된다. 법정 상속분이 바뀌면 상속재산을 배분하는 관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행 상속분은 자녀보다는 배우자를 좀 더 배려하고 있긴 하지만 자녀 수가 늘어날수록 배우자의 몫이 줄어드는 구조다. 예를 들어 자녀가 1명일 때 배우자의 상속분은 60%이지만, 자녀가 3명이면 배우자의 상속분은 33%로 확 떨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우자가 사망한 이후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K씨(68)가 그런 경우다. 그는 송파구 인근 15평짜리 재건축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A씨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1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부인 명의로 돌려놨다. 3년 전쯤 회사는 문을 닫았고, 설상가상으로 부인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부인 명의로 해뒀던 아파트를 두고 세 명의 자녀와 다툼이 벌어졌다. 실질적으로 이 아파트는 A씨의 것인데도 법정 상속분에 따라 나눠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의 여성인권위원회를 찾은 P씨(69)도 처지가 딱했다. “남편이 떠나면 현금으로 1억원 정도가 남는데, 자식들이 나를 부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P씨의 고민이었다. 슬하에는 자녀가 셋이었다. 이한본 민변 여성인권위 가족법팀장은 “합법적으로 재산을 가장 많이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이혼하거나 명의를 나눠놓는 거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법무부는 상속재산의 50%는 일단 배우자 몫으로 할당한 뒤 나머지 50%를 ‘배우자 1.5 대 자녀 각 1’로 배분하는 방향으로 상속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바뀌면 자녀가 3명인 경우에도 배우자는 상속재산의 67%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고령층 빈곤 해소에 도움

고령층의 빈곤 문제를 감안하면 배우자의 상속분 상향 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내 여성고령층의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인구의 비중)은 4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30개국 평균(15.2%)보다 세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남성 고령층의 빈곤율은 41.8%로 여성 고령층보다는 소폭 낮지만 OECD 주요 30개국 평균(11.1%)보다는 훨씬 높다.

최금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은 “한국의 고령층은 노후 준비 부족과 사회적 안전망 미비 등으로 생계유지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령층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상속분을 현행보다는 대폭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 여론 만만치 않을 듯

배우자 상속분을 높이는 민법 개정이 법무부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법무부는 2006년 배우자의 상속분을 50%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당시 배우자의 상속분 상향 조정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된 근거 중 하나는 재혼 부부가 갈수록 많아진다는 점이었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황혼 재혼의 경우 재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새어머니가 상속재산의 절반을 가져갈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굉장히 컸다”고 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2006년보다는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보고 있다. 2006년만 해도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하면 자식이 어린 경우가 많아 배우자보다는 자식에게 상속을 많이 하는 것이 자녀들의 생계보장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길어져 부모 중 한 명이 사망했을 때 자식들은 경제적 기반을 갖췄으나 남은 배우자는 자력으로 생계 유지가 힘든 고령층인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장준호 검사는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자식보다는 나이 많은 배우자에게 상속재산을 더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윤/허란/정소람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