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조 '소득 사각지대'…건보료 부과 길 열려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연 4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자, 퇴직·양도소득 및 상속·증여 소득자, 일용근로 소득자에게도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2011년 기준 이들의 총 수입은 193조원(과세 대상 소득 기준 130조원)에 달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들 소득에 보험료를 모두 부과하면 연간 보험료를 5조원가량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 기반 확대

11일 보건복지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안’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세청으로부터 납세 정보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포함시켰다. 국세청의 과세 정보 제공 근거 규정에 ‘사회보험 운영기관이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해 요구하는 경우’를 추가한 것이다. 사회보험 운영기관은 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공단 등이다.

현재 건보공단은 국세청으로부터 종합소득 자료만 받아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분리과세 대상인 연 4000만원 이하 금융(이자·배당)소득, 일용근로소득은 물론 기타소득, 상속 및 증여소득, 양도소득, 퇴직소득에 대한 과세 자료는 받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법, 국세기본법 등 관련 법에 근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가입자 2116만가구 중 20.3%인 430만가구의 소득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게 건보공단의 설명이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 4000만원 이하 금융소득과 퇴직·양도·기타소득 등을 파악할 수 있어 보험료 추가 부과가 가능해진다. 법 개정으로 새로 소득을 파악한 이들에게 보험료를 모두 부과할 경우 보험료 수입이 4조9563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건보공단은 추산했다.

2011년을 기준으로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지만 건보공단이 받아볼 수 없는 소득 130조4000억원에 대한 정보가 새로 넘어온다고 가정하고 여기서 일부 중복 등을 빼고 보험료율 5.64%를 곱해 나온 숫자다. 물론 내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이 연 2000만원 이하로 낮아져 이번 세법 개정으로 건보료를 내는 대상자는 지금보다 줄어든다.

◆금융실명제법 개정 등 첩첩산중


하지만 이들 소득에 실제로 건보료를 부과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추가로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을 개정해야 한다. 금융실명제법 4조는 비밀보장의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과세 목적’은 있지만 ‘건강보험료 징수 목적’은 규정돼 있지 않다. 즉 국세청과 금융기관 모두 공단이 금융소득 4000만원 이하 분리과세자에 대한 정보를 요청해도 비밀보장 규정 때문에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법도 바꿔야 한다. 금융소득 정보를 국세청과 금융기관에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항목을 추가하는 등의 개정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이들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건강보험법에 집어 넣어야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소득을 확대하는 것은 보험료가 늘어나는 가입자의 반발이 심해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 1년에 40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고액 연금자에 대한 건보료 부과도 몇 년째 논의를 거쳐 작년 8월에야 이뤄졌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법 개정을 통해 소득 자료를 확보하는 동시에 보험료 부과 체계를 기존의 지역, 직장 구분 없이 소득 중심으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소득 파악이 잘 안 돼 재산과 연령을 따지는 등 복잡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득 파악률이 높아지면 각자의 소득에 맞춰 보험료를 걷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홍진호 건강보험공단 보험료부과체계개선단 팀장은 “하반기 복지부와 함께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 개정 준비작업을 시작해 연말께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