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2일 '금융실명제 20년'] 실명전환 97%·세수확대…"우려했던 자금 이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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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아파트서 비밀작업…저녁에 전격 실시 발표
금융자산 4배 증가…올 금융소득 과세 2조 예상
외환위기때 외평채 무기명 발행 허용은 오점
금융자산 4배 증가…올 금융소득 과세 2조 예상
외환위기때 외평채 무기명 발행 허용은 오점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집니다.”
1993년 8월12일 오후 7시45분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로 대통령 특별담화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크게 술렁였다. 이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전격 발표했다. ‘돈에 이름표를 달아주자’는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회사와 거래할 때 가명이 아닌 실제 명의를 사용하고 금융회사가 이를 확인할 것을 의무화한 제도다. 신규로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 개인은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등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받아야 하고 법인은 사업자등록증·납세번호증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 기존 계좌 중 실명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비실명으로 확인된 자산은 인출이 금지됐다.
○극비리에, 전광석화로 추진
금융실명제법은 당초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82년 9월 국회를 통과했었다. ‘장영자 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든 뒤였다. 하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시행은 뒤로 미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금융실명제 도입을 준비하다가 접었다. 그렇게 캐비닛에 박혀 있던 시행안을 김영삼 정부가 다시 꺼내들었다. 1993년 초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이경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홍재형 재무부 장관에게 금융실명제 추진을 지시했다.
초기 준비작업은 재무부 내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김용진 세제실장(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김진표 세제심의관(현 민주당 국회의원), 백운찬 사무관(현 관세청장) 등 14명으로 비밀작업반이 꾸려졌다. 장소는 경기 과천주공아파트 504동 304호. 백운찬 관세청장은 “소집 즉시 ‘내용이 새 나갈 경우 전원 감옥에 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며 “공식적으로는 해외 출장을 간 것처럼 꾸몄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 라인도 동시에 작업을 진행했다. 양수길 당시 경제기획원 자문관과 남상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현 KDI 국제정책대학원장), 김준일 KDI 연구위원(현 한국은행 부총재보) 등이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이 전 부총리와 홍 전 장관의 안은 상호 조율을 거쳐 8월12일 저녁 국무회의에 상정됐다. 그날 밤 안건 보고서를 운반한 백 관세청장은 “폭우로 인해 7시가 넘어 간신히 청와대에 도착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게 됐다는 데 대해 상당히 고무된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대규모 자금 이탈은 기우
전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당초 우려했던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실명전환 의무기한일이었던 10월12일 전환율은 97.4%에 달했고 가명 및 차명예금 6조2379억원이 실명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자금 이탈과 함께 지하경제가 오히려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기우였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은행 총 예금과 통화량은 증가해 ‘화폐 퇴장’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나 부동산 거품, 자금의 해외 유출 등도 나타나지 않았다. 홍범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92년 5.1%에서 1995년 9%에 육박했다”며 “부동산도 1990년대 말까지는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거래의 투명성, 계약관계의 명확성, 세수 증대 등 많은 기여를 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금융실명제를 기반으로 시행에 들어간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통해 올해만 2조원 넘는 세수를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종합적으로 실명제 시행 후 지난 20년간 가계·기업·정부의 금융자산은 급증했다. 한은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1분기 말 한국 금융자산은 5308조8000억원으로 1993년 1분기 말(1151조3000억원)보다 4배 이상 불어났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장기채권과 외평채를 무기명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예외조치를 두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1998년부터 3년간 유보한 점은 실명제 취지를 퇴색시키고 비자금 조성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오점으로 지적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최근에는 5만원권 발행을 악용해 자금세탁 등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새로 대두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금융제도 전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정환/이심기/고은이 기자 ceoseo@hankyung.com
1993년 8월12일 오후 7시45분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로 대통령 특별담화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크게 술렁였다. 이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전격 발표했다. ‘돈에 이름표를 달아주자’는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회사와 거래할 때 가명이 아닌 실제 명의를 사용하고 금융회사가 이를 확인할 것을 의무화한 제도다. 신규로 금융거래를 하는 경우 개인은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등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받아야 하고 법인은 사업자등록증·납세번호증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 기존 계좌 중 실명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비실명으로 확인된 자산은 인출이 금지됐다.
○극비리에, 전광석화로 추진
금융실명제법은 당초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82년 9월 국회를 통과했었다. ‘장영자 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든 뒤였다. 하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시행은 뒤로 미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금융실명제 도입을 준비하다가 접었다. 그렇게 캐비닛에 박혀 있던 시행안을 김영삼 정부가 다시 꺼내들었다. 1993년 초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이경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홍재형 재무부 장관에게 금융실명제 추진을 지시했다.
초기 준비작업은 재무부 내에서 극비리에 진행됐다. 김용진 세제실장(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김진표 세제심의관(현 민주당 국회의원), 백운찬 사무관(현 관세청장) 등 14명으로 비밀작업반이 꾸려졌다. 장소는 경기 과천주공아파트 504동 304호. 백운찬 관세청장은 “소집 즉시 ‘내용이 새 나갈 경우 전원 감옥에 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며 “공식적으로는 해외 출장을 간 것처럼 꾸몄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 라인도 동시에 작업을 진행했다. 양수길 당시 경제기획원 자문관과 남상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현 KDI 국제정책대학원장), 김준일 KDI 연구위원(현 한국은행 부총재보) 등이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이 전 부총리와 홍 전 장관의 안은 상호 조율을 거쳐 8월12일 저녁 국무회의에 상정됐다. 그날 밤 안건 보고서를 운반한 백 관세청장은 “폭우로 인해 7시가 넘어 간신히 청와대에 도착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게 됐다는 데 대해 상당히 고무된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대규모 자금 이탈은 기우
전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당초 우려했던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실명전환 의무기한일이었던 10월12일 전환율은 97.4%에 달했고 가명 및 차명예금 6조2379억원이 실명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자금 이탈과 함께 지하경제가 오히려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걱정도 기우였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은행 총 예금과 통화량은 증가해 ‘화폐 퇴장’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나 부동산 거품, 자금의 해외 유출 등도 나타나지 않았다. 홍범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92년 5.1%에서 1995년 9%에 육박했다”며 “부동산도 1990년대 말까지는 큰 폭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거래의 투명성, 계약관계의 명확성, 세수 증대 등 많은 기여를 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금융실명제를 기반으로 시행에 들어간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통해 올해만 2조원 넘는 세수를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종합적으로 실명제 시행 후 지난 20년간 가계·기업·정부의 금융자산은 급증했다. 한은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1분기 말 한국 금융자산은 5308조8000억원으로 1993년 1분기 말(1151조3000억원)보다 4배 이상 불어났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장기채권과 외평채를 무기명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예외조치를 두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1998년부터 3년간 유보한 점은 실명제 취지를 퇴색시키고 비자금 조성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오점으로 지적된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최근에는 5만원권 발행을 악용해 자금세탁 등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새로 대두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금융제도 전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정환/이심기/고은이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