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 놀랄 때가 있다. 국산차들 사이에서 BMW 520d와 메르세데스 벤츠 E300 등 독일 준대형 세단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어서다. 아우디 A6와 폭스바겐 골프 등 다른 브랜드까지 합치면 도로는 거짓말 좀 보태서 ‘국산차 아니면 독일차’ 이런 느낌이다. 요즘 유행어를 빌려쓰면 정말 ‘대·다·나·다(대단하다)’는 말이 나온다.

‘독일차 전성시대’는 수치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 상반기 수입차 전체 신규 등록 대수는 7만4487대. 이 중 4만9671대가 독일차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등 4개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66.7%를 점유했다. 이들 4개사의 상승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폭스바겐은 상반기에 1만865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7754대)보다 판매량을 40.1%나 늘렸다. 아우디도 지난해보다 28.8% 늘어난 9399대를 팔았다. BMW와 벤츠도 각각 15.4%, 18.9%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10년 전에도 독일차가 주도권을 쥐고는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진 않았다. 2004년에는 수입차 중 독일 브랜드의 점유율이 45.1%로 절반에 못 미쳤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브랜드가 전체 수입차 시장의 29.9%를 차지하며 독일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일본 브랜드 점유율은 도요타와 렉서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15.6%로 10년 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독일 브랜드는 점유율을 20%포인트 이상 끌어올렸다.

상반기 베스트셀링 모델 순위를 살펴보면 왜 독일차가 도로에서 이토록 빈번하게 보이는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1위인 BMW 520d와 2위 벤츠 E300을 비롯 상위 10개 모델 중 8종이 독일차다. 나머지 2종은 도요타 캠리(4위)와 렉서스 ES300h(10위)다. 범위를 20위로 넓히면 16종이 독일차다. BMW그룹의 미니(MINI) 쿠퍼 D 컨트리맨(18위)을 영국차로 분류한다면 15종이다. 나머지 2종은 일본차다. 혼다 어코드(11위)와 닛산 알티마(17위)가 명함을 내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수입차 중 유독 독일차를 선호할까. 단순히 유러피언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같은 유럽이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웨덴, 영국 브랜드의 올 상반기 판매량을 다 합쳐도 7757대로 아우디 1개사에 한참 못 미친다. 독일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최근 3~4년 사이 급성장한 수입차 시장은 디젤 모델이 주도하고 있다”며 “독일차가 높은 기술력과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이 부문에서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은 “독일 브랜드는 뛰어난 디자인과 높은 품질, 디젤 기술력 등 3박자를 고루 갖춰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 성향에 잘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수입차 시장을 독일 브랜드가 독식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브랜드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면 시장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은 쏠림현상이 심하고 차를 구매할 때 감성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며 “앞으로 자동차 문화가 성숙되고 이성적 구매 비중이 커지면 이런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