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으면 죽는다" 문구업체의 무한변신
#1. 문구업이 그룹의 모태인 바른손홀딩스는 이탈리아 명품 여성속옷 ‘라펠라’의 국내 판권을 따내 패션 사업에 진출한다. 팬티가 개당 11만~33만원, 브래지어가 17만~39만원인 고가 브랜드다. 다음달 1일 서울 신라호텔에 1호점을 열고, 같은 달 강남 도산공원 인근에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인다.

#2. 모나미는 성형외과, 산부인과 등에서 쓰는 의료용품 ‘스킨라이너’를 개발해 최근 판매에 들어갔다. 환자 몸에 수술 부위를 표시할 때 쓰는 의료용 펜이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용 펜 시장에서 국산 돌풍을 불러일으킨다는 목표다.

"가만 있으면 죽는다" 문구업체의 무한변신
문구회사들이 이색 신사업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문구 시장은 △값싼 중국산의 공세 △출산율 하락에 따른 학생 수 감소 △업무환경 전산화라는 ‘삼중고’로 인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존해 나가려면 사업 다각화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문구업계의 인식이다.

◆여성속옷 수입 나선 문구회사

바른손이 들여오는 라펠라는 샤론 스톤, 캐서린 제타 존스, 줄리아 로버츠, 빅토리아 베컴, 리한나 등 해외 유명 연예인이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정식 수입되기 이전부터 강남 ‘명품족’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았다. 패션회사가 아닌 바른손이 올초 이 브랜드의 국내 판권을 따내자 패션업계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사업 다각화를 시작한 이 회사 입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바른손그룹의 문구 매출 비중은 20%대에 머물렀다.

바른손그룹은 2005년 영화사업부를 출범시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마더’ ‘방자전’ 등 히트작을 제작했고, 2010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를 인수해 2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김세진 바른손홀딩스 마케팅팀장은 “라펠라가 아시아 지역에서 연평균 40%씩 성장하고 있는 데다 한국 명품 란제리 시장은 성장 초기 단계여서 본사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취급품목도 다양화

‘153 볼펜’으로 유명한 모나미는 잉크 기술을 응용한 신사업에 나서고 있다. 의료용 펜인 스킨라이너뿐 아니라 현대·기아자동차 공장 등에서 차량 겉면에 표시를 할 때 쓰는 산업용 펜 ‘스틸라이터’도 모나미의 제품이다. 지난해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용 기표용구 납품업체로 뽑혀 총선과 대선 때 기표용구 9만9000개를 납품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기업 홍보물 제작 서비스 ‘mPOD’도 시작했다. 신성식 모나미 마케팅팀 과장은 “기업 홍보물 사업은 에뛰드하우스, 에쓰오일, 죠스푸드 등 60개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했다”며 “올해 안에 이 숫자를 100개까지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캐릭터를 활용한 문구용품에 강점을 보였던 모닝글로리 역시 취급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 기기 관련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USB케이블,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스마트폰 전용 장갑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모닝글로리는 올해 안에 측량기, 망치, 드라이버, 펜치 등 공구 판매도 시작할 계획이다.

◆문방구는 고사 위기

그나마 자본력을 갖춘 제조회사들은 다각화를 통해 생존을 모색할 수 있어 상황이 나은 편이다. 문구 수요가 위축되면서 전통적인 문구 유통점인 동네 문방구는 고사 위기에 빠져 있다. 1999년 말 2만6900여개이던 전국의 문방구 수는 2011년 말 1만5700개로 줄어들었다.

여기에는 수업 준비물을 학교에서 일괄 구매해 나눠주는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이 2011년부터 시행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올 상반기에는 전국학습준비물생산유통인협회가 주축이 돼 문구유통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