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0조원 주무르는 중국의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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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외환관리국 해외투자 책임자 주창훙
빠른 투자결정…2009년 영입
빌 그로스의 오른팔 역할…공격투자로 막대한 수익 올려
빠른 투자결정…2009년 영입
빌 그로스의 오른팔 역할…공격투자로 막대한 수익 올려
“태양이 떠오르고/동쪽이 붉게 물든다/중국의 OO이 솟아오르네/(중략)/만세, 그는 위대한 구세주.”
올해 초 중국 고위 관리들이 모인 신년파티.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참석자들은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노래 ‘동방홍(東方紅)’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사가 조금 달랐다. 마오쩌둥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이름이 있었던 것. 그 이름은 3조5000억달러(약 3913조원)에 달하는 중국 외환보유액을 주무르는 국가외환관리국(SAFE)의 해외투자책임자 주창훙(43·사진)이었다. SAFE는 중국 인민은행 산하기관으로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세계적인 투자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창훙이 현명하고 과감한 투자로 SAFE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으며 동료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또 인터넷 검색을 해도 사진 하나 찾기 어렵고 언론에 노출된 적도 없는 그의 별명을 ‘투명인간’이라고 전했다.
주창훙이 SAFE에 합류한 건 2009년. 중국 정부는 당시 해외 인재를 국영기업에 영입하기 위해 ‘1000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 월가에서 파생상품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를 SAFE의 해외투자책임자로 스카우트했다. 그는 SAFE의 ‘안전 선호’ 투자 기질부터 바꾸기 위해 70%에 이르던 미국 국채 투자 비중을 50%대로 낮췄다. 대신 미국 기업과 주식에 투자했다. 유럽연합(EU) 구제금융인 유럽안정화기금(EFSF)이 발행한 채권에도 투자했다. 부동산, 사모펀드 등으로 대미 투자를 다변화하기 위해 지난 5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특별투자팀 사무소를 연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하반기 일본 증시가 급등하기 직전 일본에 투자하는 등 승부사적 기질을 많이 보여줬다”고 전했다.
주창훙은 안후이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20세 때 미국 시카고대로 유학,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월가의 채권 트레이더가 됐다. SAFE에 합류하기 전까지 그는 빌 그로스 핌코 설립자의 오른팔로 알려졌다. 1995년 시카고대 졸업 당시 논문 지도교수였던 폴 비그먼 교수는 “주창훙은 보통 4년 걸리는 논문을 2년 만에 완성했다”며 “빠른 판단이 핵심인 월가 투자자들의 습성이 그에게 잘 맞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중국 정치권에서 주창훙을 높이 사고 있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와 라스베이거스에 대저택 두 채를 보유하고 있는 등 20년 동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도 모든 걸 뒤로 하고 나라를 위해 중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올해 초 중국 고위 관리들이 모인 신년파티.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참석자들은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노래 ‘동방홍(東方紅)’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사가 조금 달랐다. 마오쩌둥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이름이 있었던 것. 그 이름은 3조5000억달러(약 3913조원)에 달하는 중국 외환보유액을 주무르는 국가외환관리국(SAFE)의 해외투자책임자 주창훙(43·사진)이었다. SAFE는 중국 인민은행 산하기관으로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세계적인 투자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창훙이 현명하고 과감한 투자로 SAFE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으며 동료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고 17일 보도했다. 또 인터넷 검색을 해도 사진 하나 찾기 어렵고 언론에 노출된 적도 없는 그의 별명을 ‘투명인간’이라고 전했다.
주창훙이 SAFE에 합류한 건 2009년. 중국 정부는 당시 해외 인재를 국영기업에 영입하기 위해 ‘1000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 월가에서 파생상품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를 SAFE의 해외투자책임자로 스카우트했다. 그는 SAFE의 ‘안전 선호’ 투자 기질부터 바꾸기 위해 70%에 이르던 미국 국채 투자 비중을 50%대로 낮췄다. 대신 미국 기업과 주식에 투자했다. 유럽연합(EU) 구제금융인 유럽안정화기금(EFSF)이 발행한 채권에도 투자했다. 부동산, 사모펀드 등으로 대미 투자를 다변화하기 위해 지난 5월 뉴욕 맨해튼 5번가에 특별투자팀 사무소를 연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 하반기 일본 증시가 급등하기 직전 일본에 투자하는 등 승부사적 기질을 많이 보여줬다”고 전했다.
주창훙은 안후이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20세 때 미국 시카고대로 유학,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월가의 채권 트레이더가 됐다. SAFE에 합류하기 전까지 그는 빌 그로스 핌코 설립자의 오른팔로 알려졌다. 1995년 시카고대 졸업 당시 논문 지도교수였던 폴 비그먼 교수는 “주창훙은 보통 4년 걸리는 논문을 2년 만에 완성했다”며 “빠른 판단이 핵심인 월가 투자자들의 습성이 그에게 잘 맞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중국 정치권에서 주창훙을 높이 사고 있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와 라스베이거스에 대저택 두 채를 보유하고 있는 등 20년 동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도 모든 걸 뒤로 하고 나라를 위해 중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