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서정·활력…와일드혼 선율에 객석은 숨죽였다
트럼펫과 호른 등 금관악기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가 빚어내는 장중한 음악만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극의 성격을 제시하는 전주는 관객들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연스럽게 무대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막이 오르고 18인조 오케스트라 연주는 무대 퍼포먼스와 빈틈없이 어우러지며 극을 이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주·조연의 노래, 합창과 조화를 이루며 감동을 이끌어낸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지난 9일 공연을 시작한 국내 초연작 ‘스칼렛 핌퍼넬’(사진)은 뮤지컬이 주는 감동의 원천이 음악임을 입증하는 무대다. 이 작품은 ‘지킬 앤 하이드’ ‘몬테 크리스토’ 등으로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뮤지컬로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에 맞서 비밀 결사대를 조직해 무고한 생명을 구해내는 영국 귀족 퍼시의 영웅담을 그린다. 1903년 헝가리 망명 귀족 출신의 영국 여성 작가 에마 오르치의 소설이 원작이다.

극은 퍼시와 그의 아내 마그리트, 공포 정치의 행동대장 쇼블랑의 삼각구도를 짜임새 있게 풀어나간다. 이들의 사랑과 갈등, 배신과 믿음이 이야기의 축이다. 어찌 보면 뻔하고 단순한 스토리지만 개성이 뚜렷한 주역들의 캐릭터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시종일관 극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배우들은 각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퍼시 역의 박건형은 촐싹대고 능청 떠는 연기로 많은 웃음을 선사하며 유쾌하고 매력적인 영웅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쇼블랑 역의 양준모는 제 옷을 입은 듯했다. 폭넓고 강한 성량, 또렷한 발성으로 야망 넘치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칫 퍼시의 원맨쇼로 끝날 수 있는 극에 균형을 잡아줬다.

뮤지컬계의 디바 김선영은 호소력 있는 가창과 연기로 마그리트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이들 세 명이 무대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울들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는 1막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열연과 화려한 볼거리, 유려한 장면 전환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은 와일드혼의 음악이다. 각 배역과 상황에 맞게 서정적이거나 비장하거나 흥겨운 음악이 녹아든다.

이지원 음악감독의 표현대로 작품 전체를 감싸는 ‘오케스트라의 덩어리적인 질감의 표현’이 어느 작품보다 돋보인다. 다만 코러스나 주·조역이 함께 부르는 앙상블의 음량이 커서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보다 명확한 발성과 적절한 음량 조절로 오케스트라와 좀 더 적합한 하모니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관객들에게는 커튼콜이 끝난 후 바로 일어서지 말고 뒤이어 흐르는 오케스트라의 마무리 연주까지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공연은 오는 9월8일까지, 5만~1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