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인터넷 글 73건 선거법 위반"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댓글 지시’의 주범으로 결론 내리고 불구속 기소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의 축소·은폐를 지시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수사 종반 원 전 원장의 신병처리 수위와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놓고 불거진 법무부와 검찰 간, 검찰 내부 간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지는 숙제로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 직원 정치관여 글 1977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14일 국정원 직원들에게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정치적인 글을 올리도록 지시하는 등 정치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로 원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수백 개 ID를 동원해 인터넷 사이트 수십 곳에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반대하는 글을 올리거나 찬반 표시를 하도록 지시하고 사후 보고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이 북한의 동조를 받는 사람과 단체까지 종북세력으로 보는 그릇된 인식 때문에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불법적인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70여명의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으며 이들은 총 1977회에 걸쳐 불법 정치 관여 글을 올렸으며 이 가운데 73개가 선거 개입 글이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특정 후보·정당별로 검찰이 글을 분석한 결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민주당을 언급한 글이 37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부분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글이었다.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와 통진당을 비판한 글은 32건, 안철수 예비 후보를 비판한 글은 4건이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언급한 글은 3건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 정치 관여가 인정되는 ‘찬반 클릭’도 1744회에 달했다”고 말했다.

◆김용판 전 서울청장 불구속 기소

검찰은 지난해 경찰의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사건 축소 외압 논란을 빚은 김용판 전 서울청장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 전 서울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 등을 적용했다. 수사팀에 따르면 김 전 서울청장은 지난해 대선 사흘 전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확인된 ID·게시물 등을 수서경찰서에 고의로 넘겨주지 않은 채 허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검찰은 함께 고발된 김기용 전 경찰청장에게는 범행 가담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국정원의 이종명 전 3차장, 민모 전 심리전단장, 김모 심리전단 직원 등 3명, 외부 조력자 이모씨 등 6명에 대해서는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전원 기소유예했다. 국정원 의혹과 관련한 사안을 민주당 측에 제공한 혐의를 받은 직원 정모씨와 전 직원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 과정에서 따로 고발된 박모 전 국정원 국장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숙제로 남겨진 갈등 봉합

검찰이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을 기소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 등 검찰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수사팀은 이달 초께 사건 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특수-공안 라인 검사들이 구속영장 청구 방침 등을 두고 갈등을 빚어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이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검찰-법무부 간 갈등 논란과 함께 검찰의 중립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