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歌王)’ 조용필이 자신의 별명에 걸맞은 왕성한 활동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작한 전국투어 서울 공연은 사흘간 3만명을 춤추게 했고, 앨범 집계 사이트 한터정보시스템의 4월과 5월 월간차트에서 연이어 1위를 차지했다.

조용필의 인기를 그가 ‘국민가수’이기 때문이라고만 진단한다면 오산이다. 지난 4월 발매한 19집 수록곡 ‘바운스’와 ‘헬로’는 각각 마르티 돕슨과 스콧 크리페인이라는 외국 작곡가가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국민가수가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는다면 그것이 한국의 음악인가”라는 비판도 내놓는다. 하지만 안으로는 세대를 아우르고, 밖으로는 국적을 넘나드는 도전이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K팝 가수들이 외국 작곡가와 손을 잡은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올해만 해도 1월1일 소녀시대가 신곡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를 노르웨이 출신 작곡가팀 디사인 뮤직과 유럽 작곡가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대표인 작곡가 유영진이 참여해 내놨다. 최근 활동 중인 신화의 11집 타이틀곡 ‘디스 러브(This Love)’는 영국의 앤드루 잭슨 팀의 곡이다.

소녀시대의 소속사인 SM은 외국 작곡가와의 협업에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소녀시대의 3집 앨범 타이틀곡 ‘더 보이즈’는 고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테디 라일리가 작곡했다. ‘훗’ ‘런 데빌 런’ ‘소원을 말해봐’ 역시 외국 작곡가들의 작품이다. 소녀시대 외에도 샤이니 ‘셜록’, 태티서 ‘트윙클’, 에프엑스 ‘일렉트릭 쇼크’, 슈퍼주니어 ‘섹시, 프리&싱글’ 등 SM 소속 가수들이 외국 작곡가의 곡을 대거 내놨고 이 곡들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토머스 트롤슨, 윌렘 라서롬스, 브랜던 프랄리 등 외국 작곡가들이 국내 아이돌그룹 음반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뉴이스트
뉴이스트
SM뿐만이 아니다. 최근 외국 작곡가와의 협업에서 돋보이는 기획사는 손담비와 애프터스쿨의 소속사인 플레디스다. 플레디스는 지난해 그룹 뉴이스트의 데뷔곡 ‘페이스(face)’를 과감히 스웨덴 작곡가 다니엘 바크만에게 의뢰했다. 바크만은 같은 소속사 그룹 오렌지 캬라멜의 노래 ‘방콕시티’도 만들었다. ‘페이스’는 최신 트렌드인 덥스텝(강력한 베이스와 느린 템포가 특징인 일렉트로닉음악)을 응용해 차별화를 꾀했다. 덕분에 여타 남성 아이돌 그룹과 확연히 구분되는 음악성을 담보하게 됐고, 단기간에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았다.

애프터스쿨
애프터스쿨
애프터스쿨은 2011년 1집 타이틀곡을 일본 작곡가 다이시 댄스의 곡 ‘샴푸’로 정했다. 다이시는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와 빅뱅의 ‘하루하루’ ‘천국’을 만들었고 DJ로도 유명하다. 애프터스쿨의 ‘플래시백’은 세인트 바이너리의 곡이다. 애프터스쿨은 이번 새 앨범에도 외국 작곡가의 곡 두 곡을 싣는다.

SM은 1990년대 후반부터 유럽을 찾아 한국 음악 시장을 소개하고, 곡을 사기 위해 직접 외국 작곡가들에게 노크했다. 보아의 ‘넘버원’이 이렇게 계약이 된 곡이었다. 말하자면 이 시기가 외국 작곡가와 교류한 1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앨범 인세제가 시작되면서 정식으로 뮤직퍼블리싱회사(음악출판사)들이 생겨났다. 소니ATV뮤직퍼블리싱,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 뮤직큐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는 작사ㆍ작곡가와 계약하고, 음악 제작사나 가수에게 곡을 소개해주는 일종의 매니지먼트 회사다. 2단계 격인 퍼블리싱회사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3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외국 작곡가와 직거래하고, 아시아 지역 퍼블리싱까지 맡는 방식의 기획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박제준 플레디스 A&R팀 이사는 “뉴이스트나 애프터스쿨의 곡들을 모두 직접 스웨덴에 가서 받아 왔다. 스웨덴의 멜로디컬한 스타일이 한국 사람과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거래를 할 경우 퍼블리싱회사를 거치는 것에 비해 시간이나 경비가 절감되고 해외 다른 가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여유 있게 곡을 선점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외국 작곡가의 경우 아시아권 서브 퍼블리시권을 우리가 갖게 되면 추가적인 수익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원 텐아시아 기자 jjstar@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