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부터 계속된 농업인의 ‘동부그룹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동부팜한농이 ‘대기업의 농업 참여’ 논란 끝에 지난 3월 첨단 유리온실 사업 중단을 선언했음에도 농업인의 공분이 잦아들지 않아서다. 정부는 농협과 동부팜한농의 ‘불편한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경쟁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불공정거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본지 5월27일자 A1, 3면 참조

○정부, 농협에 이례적인 공문 발송

정부 "농협, 동부제품 불매운동 중단하라"
9일 농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동부그룹 제품 불매운동이 농민들 사이에서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공문(사진)을 최근 농협중앙회에 보냈다.

농식품부는 농협중앙회장에게 보낸 이 공문에서 “최근 농업인 단체와 토마토 생산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기업의 농업 참여 반대 및 특정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행되고 농협 회원 조합 일부도 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업인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공정거래법 23조에 있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지 않도록 지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동부팜한농은 작년 2월부터 경기 화성에 토마토 재배용 유리온실을 짓기 시작해 올해부터 토마토를 본격 생산할 계획이었다. 동부 측이 전량 수출하겠다고 했지만, 농업인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동부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동부팜한농은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10% 이상 줄자 지난 3월 말 온실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동부가 사업 중단을 알린 뒤에도 불매운동이 이어지자 농업인의 대표 경제조직인 농협에 정부가 공문을 보낸 것 같다”며 “공문 내용은 중앙회에서 각 회원 조합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100여개 지역 농협이 동부 제품 발주를 중단했다. 종자와 비료, 농약 등 종자재의 경우 농번기를 앞둔 3~5월이 대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동부 측의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을(乙)의 반란’만은 아니다(?)

정부 "농협, 동부제품 불매운동 중단하라"
눈에 띄는 점은 정부가 농협에 불매운동의 중단 근거로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언급한 것. 공문에서 지적한 공정거래법 23조는 ‘거래 상대방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하는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농협은 농약과 비료, 종자 등에서 동부팜한농과 경쟁 관계에 있다. 농협 자회사인 남해화학과 영일케미컬은 국내 비료 및 농약 시장에서 각각 1위와 4위를 달리고 있다. NH종묘는 국내 종자 시장에서 8위권에 있다. 이 점 때문에 동부팜한농의 사업 중단에 농협의 견제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번 불매운동이 대기업에 맞선 ‘을(乙)의 반란’이면서 동시에 업계 경쟁의 단면으로 읽힐 수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농협 측은 불매운동을 주도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해석을 강하게 부인했다. 토마토를 재배하는 지역 조합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중앙회가 일일이 개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번 권고를 두고 ‘정부가 농업인의 자발적 움직임에 개입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농업인들은 대기업의 농업 참여를 금지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를 중심으로 농업회사 법인에 대기업의 지분 한도를 줄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입법 논의가 시작돼 정부의 이번 조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사다.

세종=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