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갑(甲)의 횡포’ ‘을(乙)의 설움’이라는 말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말이지만 그동안 을이 하소연할 길이 없었던 탓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갑’과 ‘을’의 관계가 무조건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갑’의 프리미엄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업무 협의를 하는 상대에 대한 무례함은 기본이고, 인격 모독적인 폭언, 무리한 요구까지도 서슴없이 해 댄다. 오죽하면 ‘갑질’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갑질’은 결국 인격의 문제다. ‘갑질’에 익숙한 자가 그 배우자, 가족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신 신재 주세붕이 흥덕이라는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하는 벗에게 준 송서다.

“현감이 낮은 직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고을의 주인일세. 한 고을 내의 초목, 금수의 생명이 어느 것 하나 현감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없다네. 하나의 사물이라도 제대로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모두 현감의 책임이니, 하물며 백성이겠는가. 그렇기에 조정에서 크게 쓰이지 못한 선비는 반드시 현감 자리에서 제 뜻을 펴보려고 했었네. 그렇다면 현감이라는 자리가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네.”

지방 고을의 수령은 관내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다. 법령을 가지고 손쉽게 고을 백성을 제어할 수 있는데다, 갖은 핑계를 대 고혈을 쥐어짜도 마땅히 견제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갑질’이 가능한 자리였다. 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옛날에 도연명은 아들에게 종을 보내면서 ‘이 사람 또한 남의 자식이니 잘 대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네. 이런 마음을 미뤄나간다면 정사에 또한 어긋남이 없을 것이네. 나의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남의 노인에게도 베풀고 나의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남의 어린아이에게도 베푼다면 천하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듯 할 수 있을 것이니, 하물며 한 고을이겠는가.”

그는 벗이 이런 권력의 유혹에 빠질까 염려해 자신의 수령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했다. 내 가정을 다스릴 때의 마음으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내 어버이, 아내, 자식이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어떤 마음일지를 고려한다면 절로 훌륭한 치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갑질’의 원인은 대체로 ‘갑’으로서의 지위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듯이 만물은 늘 순환한다는 것이 이치이다. 당장은 ‘갑’일 수 있어도, 그 ‘을’이 자신의 ‘갑’의 ‘갑’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갑질’을 하는 부류는 늘 중간치들이다. 권력이든 지위든 정점에 있는 사람은 차라리 여유가 있어서 관대한 반면,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이 늘 각박하게 굴고, 권세를 부리려고 한다. 완장을 차고 호가호위하는 것이다.

옛날 중국에 한 마부가 있었다. 그는 재상인 안영의 전속 마부로 늘 기세가 등등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별안간 이혼을 요구했다. 까닭을 묻자 그의 아내는 말했다. “재상께서는 6척도 안 되는 작은 몸으로 존귀한 지위에 올라온 천하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십니다. 그런데도 늘 겸손하십니다. 그에 비해 당신은 8척 거구의 몸으로 마부 노릇이나 하면서 어찌 그리 오만한 것입니까.” 그날 이후로 마부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최근에 마침 몇몇 경영자와 기업의 어처구니없는 행태 때문에 ‘갑질’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이를 근절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갑질’이 어디 기업에서만 있는 것이던가. 예나 지금이나 등잔 밑은 늘 어두운 법이다.

[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갑질' 삼가라는 주세붕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 중에는 어버이날도 있다. ‘을’도 자신의 가정에서는 자랑스러운 어버이들이다.

‘갑’의 지위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어버이를 위해주는 마음으로, 다른 어버이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