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하얀색 지붕' 운동
간단한 아이디어다. 반사도가 높은 하얀색 페인트를 지붕에 칠하면 실내외 온도가 낮아져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 2009년 당시 스티븐 추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시작한 ‘하얀색 지붕 운동’의 골자다.

미국 빌딩이나 주택의 지붕은 주로 검은색 타르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흰색 페인트를 쓸 경우 한여름에 지붕은 평균 44도, 실내는 20도 가까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은색 지붕이 햇볕을 20% 반사하는 반면 흰색 페인트는 85% 이상 튕겨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에너지부 소속 건물 10만500개를 비롯 연방 정부 산하 50만개 빌딩을 대상으로 지붕 교체 또는 신축 때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도록 의무화했다. 뉴욕주에서도 2012년에 하얀색 지붕 의무화를 법제화했고 유럽연합(EU) 등에서도 정부의 권고사항으로 하얀색 지붕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절감이 '제5의 에너지' 핵심

‘하얀색 지붕 운동’을 이 시점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올해 걱정되는 에너지 대란 때문이다. 실제로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이상 고온 현상이 이달 들어 나타나면서 블랙아웃(대정전)의 공포심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하얀색 지붕 운동’은 새로운 에너지로 떠오르고 있는 ‘제5의 에너지’의 하나다. ‘제5의 에너지’란 석유 석탄 원자력 신재생에너지에 이은 새로운 에너지로 ‘절약을 통해 확보한 가용 에너지’를 말한다. 쓰는 것이 아니라 아껴서 모아 놓은 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뉴욕타임스는 2009년 ‘제5의 에너지’ 특집을 보도하면서 202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의 20%를 줄일 수 있다고 전망한 적이 있다.

우리는 96% 이상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사들여 온다. 다행히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은 우리 기업들이 이미 개발해놨다. 예를 들어 효율이 기존 형광등이나 전구에 비해 3~8배 높으면서 수명은 반영구적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의 경우 한국이 세계 정상급이다.

건물 수자원 절약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물내림변기 같은 경우도 상당수가 한국이 최초 개발이자 세계 특허를 갖고 있는 기술들이다. 문제는 이들 업체가 중소기업이라서 영세하고, 기업주나 빌딩 소유주 입장에서 기존 설비를 바꿀 경우 당장은 비용 부담이 커 에너지 효율이 높은 빌딩 만들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5의 에너지’를 눈앞에 두고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얘기다.

'21세기 새마을운동'으로

여기에 정부가 책임져야 할 포인트가 있다. 에너지를 감축하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동기를 갖도록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 기업에 지원하는 정책자금인 에스코(ESCO)자금이 2011년의 경우 3900억원에 이르지만 실제 수요자들이나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보기에는 규모도 작고 절차가 까다롭다. LED 전구를 바꾸거나 절수변기를 달면 바로 전기값이나 물값을 깎아주는 식의 수요자 인센티브 제도 같은 것도 고려해볼 만한 시점이다.

한겨울에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속옷 바람으로 지내고 있다. 유럽인들이 겨울에 카디건을 애용하고 무릎담요를 필수품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일단 좀 춥게 살아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상식들이 쌓인 전통이다.

크게 줄여본 적이 없는 만큼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고 하겠다. 정부가 할 일은 에너지 절감 의식을 갖도록 국민을 유도하고 실천하는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일이다. 에너지 절감을 ‘21세기형 새마을운동’으로 키워 가기를 제안한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