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대기 제일기획 대표, 33년 만에 후배들 앞에서 ‘인생' 프레젠테이션 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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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들려준 인생 이야기
임대기 제일기획 대표(57)가 33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가 제일기획의 수장이 돼 모교 강단에 오른 것. 임 대표는 15일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에서 마련한 동문 초청 취업 특강에 나섰다.
임 대표는 "1980년 4월 학교 강의실을 떠난 뒤 첫 방문"이라며 거리낌 없이 모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날은 제일기획 창립 40주년이기도 했다.
임 대표가 후배들에게 들려준 것은 자신의 인생 스토리. 지금까지의 삶을 5막으로 나눠 프레젠테이션(PT)하듯 보여줬다.
◆제일기획 사장의 ‘인생 프레젠테이션’ 들어볼래요?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저는 소위 배달소년이었습니다. 홍보팀서 보도자료를 만든 뒤 택시를 타고 신문사를 돌아다니며 돌려야했죠. 회의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때 임 대표가 책상 앞에 적어놓은 글이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였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니 그게 바로 군자라는 의미다. 지금도 그의 책상 앞에 붙여놓은 문구라고.
임 대표는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일이 고작 이 정도인가’ 등 온갖 불만에 시달리게 된다”며 “그러나 행운을 기다리고, 행운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행운은 세계 1위의 일본광고회사 덴츠에서의 연수였다. 그러나 덴츠 입성은 눈앞에서 좌절되는 듯 했다.
“덴츠에서의 첫 인터뷰가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덴츠는 미쓰비시, 소니 등 일본 최대 전자회사의 정보와 광고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이 매우 철저했죠. 그런데 덴츠 연수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모든 것을 알아가기 위해 덴츠에 왔다’고 답한 것입니다. 결국 저는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는 신세가 됐습니다.”
‘나아가느냐, 물러나느냐’의 문제였다.
“덴츠 임원들에게 난 죽어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체중이 7kg 빠졌죠. 한국 연수생의 건강이 악화되자 덴츠는 결국 비상 임원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전 결국 덴츠 입성에 성공하게 됐죠.(웃음)"
연수에서 돌아온 그는 그토록 원하던 ‘광고인’의 삶을 시작했다. 제일기획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처음으로 만든 광고는 삼성그룹 광고. 세계 속에서 일등이 되지 않으면 한국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담아 ‘2등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광고를 제작했다.
이후 ‘한국 지형에 강하다’를 앞세워 모토로라를 겨냥한 애니콜 론칭 광고, ‘얄미운 우등생’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또 하나의 가족’ 삼성 캠페인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임 대표는 “스펙보다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후배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한 이유다.
그는 “스펙이 빙산의 일각이라면 스토리는 빙산의 전부”라며 “자신보다 스펙이 더 나은 경쟁자가 있더라도 스토리를 통해 압도적인 가능성으로 스펙을 누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취임한 임 대표는 이날 새로운 비전과 CI(기업이미지)를 공개했다. 슬로건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움직이다(Ideas that Move)'로 바꾸고 '제일 월드와이드(Cheil Worldwide)'였던 기존 CI를 간결한 검은색 서체인 '제일(CHEIL)'로 변경했다. 국내 차원을 넘어 글로벌 차원의 회사로 이끌고, 광고업에서 ‘마케팅 솔루션업’으로 확대해나간다는 것이 임 대표의 각오다.
한경닷컴 이지현 기자 edi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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