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이 STX조선해양에 이어 지주회사인 (주)STX와 계열사인 STX중공업, STX엔진, 포스텍 등 4개사에 대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것은 조선 관련 회사만 살리고 나머지는 털어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운, 에너지, 건설업과 해외 조선사업을 포기하고 국내 조선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해 회생하겠다는 뜻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STX계열 경영지원단’이 ‘선별적 회생방안’을 제시한 것도 이런 방안을 나오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본지 4월24일자 A10면 참조

◆4개사 자율협약 체결 전망

(주)STX와 3개 계열사가 자율협약을 신청한 것은 그만큼 그룹의 전반적 재무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력 업종인 조선·해운 관련 업황이 침체된 데다 최근 회사채 신용등급마저 크게 하락하면서 정상적인 자금 조달이 힘들어졌다.

채권단이 협약 체결에 동의하면 이들 기업은 자금지원을 받아 회생의 길로 들어선다. 금융권에서는 4개사에 대한 자율협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의 대출·보증과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이 모두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주)STX에 대해서는 논란이 빚어질 수 있지만, 협약은 체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류희경 산업은행 부행장은 “(주)STX는 오는 14일 20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채권단 동의서를 받으려고 한다”며 “채권단 동의가 이뤄지면 실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긴급자금 형태로 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STX팬오션 등 나머지는 매각

진해조선소와 함께 조선사업 3대축 역할을 했던 STX다롄과 STX유럽 등 해외 생산기지는 매각된다. 국내외 금융권에서 끌어다쓴 대출과 보증 규모만 수조원에 달하는 STX다롄이 가장 큰 난제이긴 하다. STX는 일단 STX다롄의 경영권과 지분 처분 권한을 중국 정부에 위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STX다롄의 경영권을 포기하는 대신 국내 계열사들이 지급보증한 1조원 이상에 대한 부담을 덜겠다는 조치”라고 말했다. STX그룹은 STX유럽 산하에 있는 STX프랑스와 STX핀란드 매각도 추진 중이다.

조선 관련 산업을 제외한 계열사도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산은 사모펀드(PE)는 STX팬오션을 인수하기 위한 실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사 결과 ‘인수 불가’ 판정이 나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해운업 및 금융시장 등에 미칠 후폭풍을 우려하는 금융당국의 태도를 감안하면 법정관리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STX에너지는 국내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키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대주주 지분 축소 불가피

매각 작업이 끝나면 STX그룹은 국내 조선사업 중심회사로 재편된다. 재계 서열도 13위(자산기준)에서 30위권 밖으로 밀려날 전망이다. ‘강덕수 신화’는 회사 설립 12년 만에 한풀 꺾이게 된다.

하지만 강덕수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 관련 회사를 살리는 쪽으로 결정된 이상 기존 경영진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류 부행장은 “무조건 오너를 배제하는 게 경영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당연히 해당 기업 경영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기존 오너의 도움을 받아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강 회장의 지분은 줄어드는 게 불가피하다. 채권단이 자금지원 대가로 대주주 감자를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강 회장도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의결권 처분 위임장 등을 제출했다.

■ 자율협약

채권단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과 협약을 맺은 뒤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경영활동 전반을 감독한다. 자금 지원과 함께 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低)강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불린다. 모든 채권단이 아닌 주요 채권금융회사만 자금 지원에 참여하는 점에서 워크아웃과 다르다.

장창민/이상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