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실투성이 연금저축펀드 판매
“내 형편에 맞는 펀드는 어떤 것들이 있고, 특성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더군요. 운용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인데 일반투자자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대형 자산운용회사 직원 H씨는 지난달 중순 한 증권사를 찾아 연금저축펀드에 가입하면서 부실한 설명에 “짜증까지 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증권사들은 지난달 초 소득세법 개정에 맞춰 새 연금저축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새 연금저축펀드는 증권사가 내놓은 여러 연금저축펀드 가운데 몇 개를 골라 자금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별도 연금클래스만 설정하면 기존에 운용하는 펀드에도 투자할 수 있다. 종전 연금저축펀드가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 대응이 어렵고, 투자 상품 구색이 적다는 약점을 보완한 상품이다. 저금리 시대에 금융투자상품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도 담겨 있다. 연간 납입금액 중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도 있다.

그런데 영업현장에서 연금저축펀드는 찬밥 신세였다. 기자가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DB대우증권 등 5개 증권사 지점을 방문해 연금저축펀드 가입 상담을 받아 보니 과거 수익률,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위험 등 펀드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있었던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한국투자증권과 KDB대우증권이 투자자 성향을 분석한 뒤 적합한 펀드들을 비교적 잘 알려줄 뿐이었다. 나머지는 사내용 상품 설명 자료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고 기계적으로 설명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국채 투자 비중이 높은 ‘미래에셋글로벌다이나믹’과 아시아 고위험 채권에 투자하는 ‘피델리티아시아하이일드’를 투자 국가만 다른 비슷한 채권형 펀드처럼 소개하는 곳도 있었다. 어떤 증권사는 계열사가 내놓은 10개 펀드만을 연금저축용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증권사는 실제로 연금저축용으로 총 41개 펀드를 판다.

연금저축펀드는 증권사엔 ‘돈이 안되는 상품’이다. 1인당 가입액이 적은 데다 수수료도 일반 펀드보다 낮기 때문이다. 대신 가입자 상담과 관리에 품은 많이 든다. 한두 곳을 제외하곤 판매량이 미미한 근본적인 이유다. 증권사들은 아직도 ‘지금 돈 많은 고객이 고객’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조귀동 증권부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