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요즈마펀드가 성공한 건 민간에 맡겼기 때문"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南橘北枳·남귤북지)고 하죠? 지금 한국의 벤처 정책이 딱 그 꼴입니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가 벤처 활성화를 위해 이스라엘의 창업 지원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에 대한 쓴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 회장은 ‘벤처 등용문’으로 불리는 고벤처포럼을 2008년 설립해 스타트업(start-up·초기 벤처기업) 창업가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고, 창업가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을 도와주고 있다.

고 회장은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나 한국의 모태펀드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중요한 건 어떤 특정 제도를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2005년 도입된 모태펀드가 제 역할을 했다면 한국의 벤처 투자 환경이 훨씬 개선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주도로 운영된 한국의 모태펀드가 투자 규모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양질의 벤처를 발굴하고 벤처 생태계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는 얘기다. 고 회장은 “요즈마펀드가 성공한 건 정부가 주도해 만들었지만 이후 개입하지 않고 민간에 맡겼기 때문”이라며 “요즈마펀드라는 귤이 한국에 와서 탱자가 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벤처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으로 교육정책의 변화를 꼽았다. 고 회장은 “창업이 늘고 있다지만 대학을 가봐라.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보다 더 창업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고, 실패를 할 경우 위험이 너무 큰 게 똑똑한 젊은이들의 창업을 막는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기업가정신은 혁신에 대한 열정과 비전에서 나온다”며 “혁신은 융합하는 능력에서 비롯되고 이는 정부가 교육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특히 창업가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는 주문이다. 고 회장은 “실패를 한 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재기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은 엔젤투자자들이 실패 후 재기하는 창업자들의 안전망 역할을 했고, 독일 핀란드 등 유럽에서는 복지제도가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고 회장은 “지금 필요한 건 당장 벤처기업 수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근시안적인 정책이 아니라 진짜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 보겠다는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정부가 5년 안에 그 기반만이라도 닦을 수 있다면 대단한 성공”이라고 덧붙였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