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ELS 열풍 이을 '명품' 만들어 증권업계 확실한 리더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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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한국투자증권
올해 증권영업 화두는 중위험·중수익 상품
초대형 증권사 나와야 도토리 키재기 출혈경쟁 줄어
이슬람 자금 중개 매력…인도네시아 면밀히 보는 중
올해 증권영업 화두는 중위험·중수익 상품
초대형 증권사 나와야 도토리 키재기 출혈경쟁 줄어
이슬람 자금 중개 매력…인도네시아 면밀히 보는 중
“국내 증권업계에도 확실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한국투자증권이 그 자리에 오를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증권업계 구조조정을 기회로 삼기 위해 다른 증권사 인수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53·사진)은 즉답을 피했다. 다만 “은행이나 보험업계처럼 초대형 증권사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당장 의미 있는 인수·합병(M&A)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중장기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유 사장은 올해 증권업계의 화두는 ‘누가 잘 만들어진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주식연계증권(ELS) 열풍의 뒤를 이을 새로운 상품 개발이 위기에 처한 증권사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해외 진출과 관련해선 “인도네시아 시장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M&A가 활발할 것 같습니까.
“의미 있는 M&A는 당분간 거의 없을 겁니다. 규모 있는 회사들끼리 합쳐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선 증권사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곳도 나올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매물에 관심은 없습니다. 시너지 효과보다 불편함이 많을 수 있지요. 팔리지 않으면 결국 그 회사는 문을 닫게 될 겁니다.”
▷업계 리더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셨는데요.
“은행만 해도 4대 금융지주가 있고, 보험도 삼성생명이라는 압도적인 리더가 있습니다. 유독 증권사들만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하고 있지요. 증권업계에도 확실한 리더가 있어야 시장 질서를 잡아갈 수 있습니다. 출혈 경쟁은 자칫 금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2회계연도 실적은 어땠습니까.
“이달 말이 지나야 확실한 실적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년에 이어 순이익 기준으로 업계 1위를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비결이 무엇인지요.
“지난 몇 년간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조직을 꾸준히 업그레이드시켜 왔습니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짧은 기간에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죠. 덤핑으로 승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업금융(IB) 업무만 해도 3~4년 전엔 1등이 아니었죠. 직원들을 믿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했더니 이익으로 결실이 맺어지고 있습니다.”
▷직원 얘기를 하셨는데, 특별한 인사원칙이 있습니까.
“한국투자증권에선 채용이나 승진과 관련해 어떤 청탁도 발 붙이지 못합니다. 평가와 보상을 철저히 성과에 연동시켜 놓았죠. 학력이나 집안 배경도 일절 보지 않습니다. 승진 인사 때 사장이 보는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인사고과 점수와 영업 실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청탁이 있지 않겠습니까.
“채용 민원은 언제나 있습니다. 3년 전쯤 신입사원을 뽑을 때 최종 결정권을 가진 면접위원 4명이 민원으로 올라온 신입사원 후보들의 명단을 쭉 뽑아본 적이 있습니다. 50명 뽑기로 했는데 합쳐 보니 200명은 족히 됐죠. 이 중에서 기준을 통과한 3~4명만 뽑았습니다. 그후로 민원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때마다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더니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증권업계가 어려운데 작년에도 신입사원을 뽑으셨죠.
“그래도 우리가 사정이 제일 나을 겁니다. 외환위기 직후 3년 정도 신입사원을 뽑지 않은 적도 있었죠. 그때 후유증이 꽤 컸습니다. 조직은 피라미드형 구조를 갖춰야 건강합니다.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해도 신입 사원을 예년 수준만큼 채용할 생각입니다.”
▷어떤 직원들이 일을 잘합니까.
“임직원 인·적성 검사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투자증권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일을 잘하나 알아봤습니다. 혈액형이나 학벌 등 유의미한 기준이 별로 안 나왔어요. 그나마 나온 게 표준 체형으로 키 170㎝에 몸무게 80㎏이었습니다. 들어올 때는 날씬했는데 영업하느라 살이 찐 직원들이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다음이 다자녀 가정의 둘째입니다. 둘째들이 아래에서 치이고 위에 눌려 독립심이 강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면접볼 때 가급적이면 형제들이 많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최근까지 2013년회계연도 사업계획을 짰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난 회계연도에 선전한 만큼 올해도 지난해 세웠던 계획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할 겁니다. 세부적인 목표들을 ‘튜닝’하는 수준에서 사업을 일궈갈 계획입니다.”
▷조직개편을 통해 보강한 부분이 있습니까.
“좋은 상품을 만들고 잘 팔도록 해당 부문을 보강했습니다. 프로덕트(상품)와 시장의 연결 고리를 잘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품을 말하는 겁니까.
“올해는 증권사별로 중위험·중수익 상품 개발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국내 가계의 금융 자산이 2500조원입니다. 문제는 저금리에 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죠. 투자자들로선 주식 직접 투자는 위험하고, 펀드 열기도 식었습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내려가는 바람에 ELS 인기도 시들해졌어요. 증권사가 새로운 대안을 내놔야 할 때입니다.”
▷해외 부문은 상황이 어떤가요.
“해외 비즈니스는 속도를 내기 어렵습니다. 미국 시장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 시장은 간단치 않습니다. 선진 시장의 대형 증권사들을 상대로 무모하게 브로커리지 수수료 경쟁을 할 수도 없지요. 미국 가서 애플 주식을 갖고 미국 증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해외 진출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안이 이머징마켓이죠.”
▷베트남 쪽에서 혹시 고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베트남에 법인을 만든 지 만 2년째입니다. 그 사이 점유율을 0.2%에서 1%로 끌어올렸습니다. 차근차근 커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한국투자증권의 ‘아바타’(복제품이란 뜻)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은 주식 브로커리지에 치중하고 있지만 IB 시장이 생기면 그쪽에 집중할 겁니다.”
▷다음 해외 진출지는 어디입니까.
“인도네시아입니다. 베트남처럼 현지 증권사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죠. 시장 조사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슬람 금융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건가요.
“한국은 외화 조달을 미국 등 선진 시장에만 의존해왔습니다. 중국은 절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위기 시 안정적으로 외자를 들여올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이슬람 금융입니다. 중동 자본은 장기 투자를 선호합니다. 상대적으로 조달 조건도 좋죠.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인프라 개발 등 대형 사업을 진행할 때 중동 자본을 끌어쓸 수 있습니다.”
▷정부 정책이 중요할 텐데요.
“새 정부가 이슬람 금융에까지 관심을 갖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필요성을 인식하게 될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