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는 힘이 없지만 스토리텔링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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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친근한 의사소통…비즈니스 현장서 '마법의 카드'
인류에게 친근한 의사소통…비즈니스 현장서 '마법의 카드'
스토리로 리드하는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당선 소감을 발표한 자리에서 106세의 할머니가 겪은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모습은 스토리텔링의 교과서라고 하겠다. 미국인이 아니라도 그 연설을 들으며 가슴 뭉클해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스토리는 왜 늘 사람을 사로잡는 것일까. 스토리는 인류에게 가장 친근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뇌는 사전처럼 정보를 순서대로 분류하고 기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연관성 높은 정보끼리 묶어서 순서를 정하고, 분류하며, 기억한다. 예를 들어 열대 우림의 원시인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흥미로운 대답을 듣는다고 한다. 나이를 숫자로 답하는 대신 큰 아이는 큰 나무가 벼락맞은 다음 해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답을 해준단다.
이 사례를 통해 문명화 이전부터 인류가 스토리로 정보를 기억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류가 정보를 연관성 위주로 처리하기 때문에 뛰어난 리더들은 종종 우화나 비유를 통해 중요한 가르침을 쉽게 전달했다. 일상에서 늘 만나는 물건이나 동물이 등장하는 스토리 속에 교훈을 담았다는 말이다. 직접 글을 써서 남기지 않은 이솝의 우화나 예수의 비유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인류에게 봉사해온 스토리텔링은 활자의 시대가 찾아오자 무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스토리에 의존하는 대신 문서를 통해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토리가 유치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스토리는 매우 강력한 의사소통 도구이며, 소통과 힐링이 대세를 이루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스토리의 마법을 일찌감치 파악한 나이키는 사내에 ‘기업 스토리텔러’라는 직무를 두고, P&G는 할리우드 영화감독까지 초빙해 임원들에게 스토리텔링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스토리텔링의 힘을 종종 경험한다. 개중에는 아슬아슬한 비즈니스 상황을 역전시킨 개인 경험도 있다. 컨설턴트로 일하던 2010년 4월, 서울 중구에 있는 S식품 빌딩의 대기실에서 나는 컨소시엄을 구성한 컨설턴트들과 함께 제안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S식품은 대형마트에 대응하면서도 기존 대리점 영업채널을 건실하게 유지하기 위해 영업전략을 수정하고, 영업직원들의 대리점 컨설팅 능력을 육성하고자 했다.
대체로 이런 제안 발표의 경우 보통 4개팀 정도가 제안에 들어오므로, 기업 관계자들은 1시간30분씩 총 6시간에 걸친 발표와 질의응답의 고문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발표자들은 발표 순서에 굉장히 민감하다. 처음 발표하는 회사는 충분한 관심을 받지만 고객에게 기초만 설명하다 물러나기 쉽고, 나중 발표자들은 앞선 발표자와 내용이 중복돼 불리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회사로 구성된 필자의 컨소시엄 팀이 네 팀 중 마지막으로 발표를 시작한 지 20분 만이었다. 이미 다른 세 팀의 발표로 지칠 대로 지치고 예민해진 S식품 관계자들과 컨설턴트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다가는 필자가 발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시간이 끝나버릴 지경이었다. 필자는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잠시 주제를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필자를 쳐다보았다. 필자는 가방에서 자석을 꺼내들었다. “이것은 W증권사의 변화관리 프로젝트 주제 CHANGE를 한 글자씩 프린트한 자석입니다.” 효과가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람들이 슬라이드 화면이 아닌 필자를 보기 시작했다. 이후 필자는 그 증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변화에 동참시켰는지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확신을 얻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는 파워가 없지만, 스토리에는 파워가 있다. 다음날 필자는 S식품으로부터 컨설팅 프로젝트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10여년의 컨설팅 경력을 통해서 필자는 중요한 순간에 매번 스토리텔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마법의 카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라고 말하는 순간, 졸던 사람은 일어나고 딴청 부리던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모두 오바마 대통령처럼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 일상에서 발견하는 스토리만 잘 모으고 정리해도 큰 자산이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는 만들고 나눌 수 있다. 그걸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스토리텔러다. 이제 파워포인트는 내려놓자. 스토리로 리드하자.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스토리는 왜 늘 사람을 사로잡는 것일까. 스토리는 인류에게 가장 친근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뇌는 사전처럼 정보를 순서대로 분류하고 기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연관성 높은 정보끼리 묶어서 순서를 정하고, 분류하며, 기억한다. 예를 들어 열대 우림의 원시인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흥미로운 대답을 듣는다고 한다. 나이를 숫자로 답하는 대신 큰 아이는 큰 나무가 벼락맞은 다음 해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답을 해준단다.
이 사례를 통해 문명화 이전부터 인류가 스토리로 정보를 기억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류가 정보를 연관성 위주로 처리하기 때문에 뛰어난 리더들은 종종 우화나 비유를 통해 중요한 가르침을 쉽게 전달했다. 일상에서 늘 만나는 물건이나 동물이 등장하는 스토리 속에 교훈을 담았다는 말이다. 직접 글을 써서 남기지 않은 이솝의 우화나 예수의 비유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인류에게 봉사해온 스토리텔링은 활자의 시대가 찾아오자 무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스토리에 의존하는 대신 문서를 통해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토리가 유치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스토리는 매우 강력한 의사소통 도구이며, 소통과 힐링이 대세를 이루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스토리의 마법을 일찌감치 파악한 나이키는 사내에 ‘기업 스토리텔러’라는 직무를 두고, P&G는 할리우드 영화감독까지 초빙해 임원들에게 스토리텔링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스토리텔링의 힘을 종종 경험한다. 개중에는 아슬아슬한 비즈니스 상황을 역전시킨 개인 경험도 있다. 컨설턴트로 일하던 2010년 4월, 서울 중구에 있는 S식품 빌딩의 대기실에서 나는 컨소시엄을 구성한 컨설턴트들과 함께 제안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S식품은 대형마트에 대응하면서도 기존 대리점 영업채널을 건실하게 유지하기 위해 영업전략을 수정하고, 영업직원들의 대리점 컨설팅 능력을 육성하고자 했다.
대체로 이런 제안 발표의 경우 보통 4개팀 정도가 제안에 들어오므로, 기업 관계자들은 1시간30분씩 총 6시간에 걸친 발표와 질의응답의 고문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발표자들은 발표 순서에 굉장히 민감하다. 처음 발표하는 회사는 충분한 관심을 받지만 고객에게 기초만 설명하다 물러나기 쉽고, 나중 발표자들은 앞선 발표자와 내용이 중복돼 불리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회사로 구성된 필자의 컨소시엄 팀이 네 팀 중 마지막으로 발표를 시작한 지 20분 만이었다. 이미 다른 세 팀의 발표로 지칠 대로 지치고 예민해진 S식품 관계자들과 컨설턴트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다가는 필자가 발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시간이 끝나버릴 지경이었다. 필자는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잠시 주제를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필자를 쳐다보았다. 필자는 가방에서 자석을 꺼내들었다. “이것은 W증권사의 변화관리 프로젝트 주제 CHANGE를 한 글자씩 프린트한 자석입니다.” 효과가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사람들이 슬라이드 화면이 아닌 필자를 보기 시작했다. 이후 필자는 그 증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변화에 동참시켰는지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확신을 얻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는 파워가 없지만, 스토리에는 파워가 있다. 다음날 필자는 S식품으로부터 컨설팅 프로젝트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10여년의 컨설팅 경력을 통해서 필자는 중요한 순간에 매번 스토리텔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마법의 카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라고 말하는 순간, 졸던 사람은 일어나고 딴청 부리던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모두 오바마 대통령처럼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 일상에서 발견하는 스토리만 잘 모으고 정리해도 큰 자산이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는 만들고 나눌 수 있다. 그걸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스토리텔러다. 이제 파워포인트는 내려놓자. 스토리로 리드하자.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