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성자’로 추앙받는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는 13세 때인 1889년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두툼한 악보 책을 발견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모음집’이었다. 악보를 탐독한 그는 25세가 돼서야 이 곡을 무대에서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가졌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뒤 카살스는 이 곡을 음반으로 남겼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첼리스트들에게 바이블로 통한다. 그만큼 수많은 첼리스트가 이 곡을 녹음했다. 카살스는 물론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 등 내로라하는 첼리스트들이 명반을 내놨다. 하지만 무대에서 듣기란 쉽지 않다. 워낙 유명한 곡인 탓에 연주자의 부담도 크고 여섯 곡을 모두 연주하려면 3시간이 넘게 걸려서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양성원 연세대 음대 교수가 오는 2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200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이틀 동안 연주했지만 이번에는 한자리에서 3시간30분(휴식시간 30분 포함) 동안 전곡을 들려준다.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양 교수를 만났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모음집’만큼 투명하면서도 깊이 있는 곡은 없습니다. 곡을 연주하는 순간 종교적인 느낌까지 받아요. 2006년 공연 이후 전곡 연주회는 처음이지만 매년 한두 곡은 연주해 왔는데, 소리를 낸다기보다 나도 모르게 몸속 깊이 배어든 음악을 꺼낸다는 느낌으로 연주하지요. 7년 전에는 왼손의 손가락으로 연주했지만 지금은 오른손의 활로 연주하는 것 같아요.”

음을 정확하게 잡는 것뿐만 아니라 음으로 색채를 그리는 데 신경을 더 쓴다는 얘기다. 3시간 넘게 혼자 연주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냐는 질문에는 “이 곡은 길면서도 짧다”고 답했다.

“사실 첫 번째 곡을 연주할 때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어요.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몇 초 만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한참 걸릴 때도 있어요. 일단 몰입하고 나면 6곡에 걸쳐 바흐가 그려놓은 즐거움, 외로움, 슬픔 등 스토리를 쫓아가느라 3시간이란 사실도 느낄 수 없어요.”

곡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청중에게 들려주고 그려내면서 공유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그에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곡을 기억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손가락으로 외우는 것, 악보를 눈으로 보지 않고도 그릴 수준으로 외우는 것, 귀로 외우는 것이라고 한다.

“이 방법들을 모두 합하면 99%까지 곡을 외울 수 있어요. 하지만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마지막 1%입니다. 악보대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 이상을 추구할 때 모자란 1%를 채울 수 있어요.”

그에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평생 함께할 곡이다. 이 곡의 악보는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연습한다. 지난해에는 이 곡을 연주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첼로 모음곡 전곡의 구조와 화성, 연습방법을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35시간 분량이다. 그는 “세계를 다니며 마스터 클래스를 하다 보면 화성 구조 등에 대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며 “스승들에게 배우고 20여년간 연주하며 느낀 것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주를 잘하면 설명할 때 버벅거리고, 설명을 잘하면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영상 완성까지 꼬박 1년6개월이 걸렸네요,”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