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파도는 천고의 세월을 거치며 바다 위에 천태만상의 섬들을 빚어놓았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에 대해 시인 정지용은 “그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통영 일대의 바다를 보면 시인의 말이 결코 겸양의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통영은 어떤 계절에 들러도 후회가 없지만 가장 좋은 철은 역시 봄이다. 봄처럼 생기있고 나른할 정도로 편안한 곳.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면 통영으로 떠날 일이다.

◆‘삼칭이길’의 빼어난 해안 풍경 일품


통영사람들은 통영을 사투리 입말 그대로 써서 ‘토영’이라고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 금상(2011년 리브컴어워즈)에 어울리는 정감어린 표현이다. 통영에서 봄을 잘 느끼려면 미륵산에 오를 일이다. 451m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지금은 케이블카까지 생겨 더욱 쉽게 오를 수 있다. 통영 케이블카는 길이만 1975m. 한국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 부근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륵산을 오르는 이들의 얼굴에는 이미 봄이 피어 있다.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만 가면 정상이 나온다. 고깃배가 왕래하는 통영항과 섬들이 보인다. 맑은 날이면 일본의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한다. ‘한 폭의 그림’이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절경의 느낌. 어떤 형용사로도 풍경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통영에는 무려 562개나 되는 섬이 마치 보석처럼 박혀 있다.

미륵산 정상에서 남쪽 해안을 보면 도로가 길게 이어진 것이 보인다. 일운항에서 마리나리조트까지 5.7㎞에 이르는 이 길은 일명 ‘삼칭이길’로 불린다.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파도가 넘실대고 반대편에는 기암절벽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산책로로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더욱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싱그럽고 따스한 바닷바람이 살며시 얼굴에 닿는 감촉이 마치 비단결처럼 보드랍다.

조선시대 통제영이었던 ‘삼천진’에서 유래한 삼칭이길은 원래 해안침식을 막기 위한 제방이었다. 그러다 멋진 풍경을 묵히기 아까워서 길을 내었더니 자연스럽게 통영의 명물이 됐다. 세 개의 바위가 물 위에 떠 있는 일명 ‘복바위’가 있는 곳이 삼칭이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 옛날 선녀 3명이 옥황상제 근위병 3명과 몰래 사랑을 나누다 발각돼 벼락을 맞고 그 자리에서 돌이 돼 서 있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장사도 동백숲 터널…소매물도 하얀등대…그리움이 만든 풍경

○동백으로 화사해진 섬 장사도

봄의 향기가 더욱 짙은 곳은 뱃길로 40분 정도 떨어진 장사도다. 긴 뱀이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장사도(長蛇島)는 한때 ‘늬비섬’으로도 불렸다. 경상도 말로 ‘늬비’는 누에이니 누에를 닮았다는 뜻도 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섬의 모습이 달리 보일 수 있지만 뱀보다는 왠지 누에에 가까운 듯하다.

장사도는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무인도 같은 섬이었다. 1900년 처음으로 사람이 입도한 이래 1986년 마지막 주민이 섬을 떠나면서 마치 폐교된 분교처럼 퇴락했다. 사람은 끊어졌지만 자연은 스스로 번식해서 풍성해졌다. 무려 10만그루나 되는 자생 동백나무가 화사하게 폈다 아무도 모르게 떨어졌다.

세월이 흘러 장사도는 해상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있던 사물을 밀어내는 방식 대신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공원을 만들었다. 섬을 떠날 때 있었던 죽도국민학교 장사도 분교는 물론 교회와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집까지 어느 것 하나 허물지 않고 섬 안에 그대로 두었다. 탐방로를 새로 만들지 않고 주민들이 마실 삼아 다녔던 옛 오솔길을 다듬어 길을 냈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장사도 해상공원의 입구에는 동백꽃이 수줍게 사람들을 반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은 아직도 봄이 먼 듯만 하다. 그래도 벙글거리며 피어있는 동백을 보면 성큼 다가온 봄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탐방로를 따라 길을 올라서면 동백나무 숲 터널이 보인다. 1~2주 정도만 지나면 흐드러진 동백이 터널을 이뤄 분분하게 꽃잎을 떨구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가슴에 남는 풍경 등대섬

해상고원답게 곳곳의 조형물도 아기자기하다. 무지개다리와 야외공연장 뒤에 조성된 얼굴 모양의 브론즈 동상도 흥미롭다. 선인장을 비롯한 다육식물과 풍란들이 전시된 반달 모양의 온실도 둘러볼 만하다.

섬에서 바다를 보는 것도 좋지만 바다에서 섬을 보는 것도 색다른 맛을 준다. 장사도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매물도가 나온다. 매물도는 본섬인 소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도로 나눠져 있는데 우리에게는 소매물도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소매물도가 유명해진 것은 크라운제과의 ‘쿠크다스’라는 과자 CF의 배경이 되면서부터다. 요즘도 연간 40만명 이상이 다녀오는 유명섬이 됐다.

선착장에서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곳에 등대길이 있다. 배에서 내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폭풍의 언덕과 남매바위 한산초등학교 소매물도 분교가 차례로 펼쳐진다.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에 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소매물도의 전망포인트는 망태봉(152m). 하루 두 차례 바닷길이 열리는 열목개를 지나면 등대섬에 이를 수 있다. 배 위에서 보는 소매물도 또한 이색적이다. 기암절벽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다가 섬 내부의 부드러운 속살을 살짝 보여준다. 소매물도 위의 하얀등대는 원래 밀수꾼들을 감시하는 일종의 초소였지만 이제는 소매물도 최고의 전망포인트가 됐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