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3월7일 오후 3시55분

“한국기업이 해외기업을 인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매물 많겠다, 원화가치가 오르고 있겠다, 돈 빌리기 쉽겠다…. 3박자가 딱 맞아떨어지잖아요.”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찰스 나이트 글로벌 인수·합병(M&A) 부문 대표는 7일 “한국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이같이 말했다. 나이트 대표는 딜로이트에서 글로벌M&A전략을 설계하고 있는 30년 경력의 M&A전문가다.

한국 M&A시장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방한한 나이트 대표를 이날 서울 여의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본사에서 만났다. 인터뷰에는 로런스 치아 딜로이트 아시아·태평양 재무자문 부문 대표와 홍종성 딜로이트안진 재무자문본부 전무가 함께했다.

▷올해 글로벌 M&A시장 전망은.

“거래규모나 액수가 작년보다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미국 중국 등 주요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이 거래를 살려내고 있다. ‘정치 리스크’를 감안해 상당 기간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M&A 딜들이 살아나는 모습이다. 지역별로는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매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기업들에도 기회가 올까.

“물론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크로스보더 딜(국경 간 거래)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M&A시장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5년 전만 해도 10%에도 못 미쳤지만 작년에는 26%로 확대됐다. 딜로이트가 지난해 한국을 중국 일본과 함께 ‘11개 핵심시장’으로 선정한 이유다. 중국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해외기업 인수를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은 기업들 스스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기업 인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기업에 우호적인 여건은 형성돼 있는가.

“해외기업을 인수하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는 찾기 힘들 것이다. 일단 환율이 한국기업에 우호적이다. 원화가치가 절상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해외기업의 매각가격은 더욱 떨어졌다. 똑같은 매물을 작년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큼지막한 해외 기업을 손에 넣으려면 금융 지원이 필수인데, 과거와 달리 한국의 은행과 연기금 등도 적극적으로 크로스보더 M&A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한국기업들이 더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중국 기업과 경쟁하면 한국기업이 불리하지 않을지.

“중국은 해외기업 M&A를 추진하는 동기가 한국과 다르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내셔널 챔피언’을 키운 뒤 이들이 글로벌 챔피언으로 성장하도록 해외기업 M&A를 지원하는 구조다. 그런 만큼 중국 기업들의 관심사는 기업 규모를 더 키우는 데 있다. 한국과 M&A 타깃을 선정하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한국기업들이 관심 가질 해외기업이 있다면.

“에너지와 자원 관련 기업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다. 대개 (사업성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대규모 설비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업체들이다. 자동차 업계도 지켜봐야 한다. 유통채널과 부품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M&A 필요성이 커졌다.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에선 농산물 생산·판매업체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미국 경기가 기지개를 켜면서 미국 부동산 M&A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미국·유럽의 패션업체에 관심을 갖는 한국기업도 많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이 위기를 겪으면서 오랜 전통을 지닌 명품 브랜드들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이 이런 기업을 인수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 중국기업이라면 명품 브랜드를 인수한 뒤 13억명에 달하는 내수시장에서 팔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국의 내수시장은 좁다. 명품 브랜드를 손에 넣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전 세계에서 팔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채널을 확보할 수 없다면 섣부른 인수는 자제해야 한다.”

▷해외기업 M&A의 또 다른 걸림돌은 인수 후 융화가 안 된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M&A가 성공하는 확률은 15%에 못 미친다. 인수 후 통합 작업(PMI)을 소홀히 한 탓에 인수 직후 핵심 인력들이 모두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 기업들은 회사 인수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PMI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인수계약을 맺는 건 M&A의 시작일 뿐이다. 인수한 기업과 문화적으로 융합해야 성공적인 M&A라고 할 수 있다.”

▷해외기업들도 한국기업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나.

“한국기업들의 기술력과 운영능력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다. 조건만 맞다면 관심을 가질 만한 해외기업이 많을 것이다.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OB맥주의 경우 많은 해외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 탄탄한 입지를 쌓은 데다 향후 해외시장에서 활약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가업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대개 3대로 넘어가면서 매물로 나오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정영효/오상헌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