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홀린 '비데 만드는 여자'
건자재, 위생도기를 생산하는 아이에스동서(회장 권혁운)는 2010년 초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비데업체인 삼홍테크를 인수할까 말까하는 고민이었다. 이를 두고 사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삼홍테크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손실액은 11억원. 이 때문에 많은 임원이 삼홍테크 인수를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권 회장의 장녀인 권지혜 아이에스동서 마케팅실장(38)의 생각은 달랐다. 삼홍테크가 국내 최초로 비데를 개발한 업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 게버릿, 아메리칸스탠더드 등 글로벌 욕실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다.

유럽인 홀린 '비데 만드는 여자'
권 실장의 뜻대로 그해 3월 아이에스동서는 삼홍테크 지분 전량을 41억5000만원에 인수했다. 그는 삼홍테크 인수와 함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부활의 조타수가 됐다. 결과는 대성공. 2011년엔 4년 만에 7억원의 흑자를 냈다. 매출은 170억원. 지난해 매출은 188억원, 영업이익은 8억원에 달했다. 그는 “삼홍테크의 비데 원천기술을 확보한다면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판단했다”며 “경영 혁신을 이루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행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5년 아이에스동서의 전신인 일신건설산업 홍보팀 과장으로 입사하면서 가업승계를 시작했다. 지금은 삼홍테크 대표이사와 아이에스동서 디자인 실장을 겸하고 있다.

권 사장은 삼홍테크를 ‘턴어라운드’시킨 공을 부친 권 회장에게 돌렸다. ‘끊임없이 위기 의식을 갖고 생존 방법에 대해 언제나 고민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항상 염두에 둔 결과 삼홍테크를 환골탈태시킬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흑자로 전환하고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경영 혁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소통 리더십을 강화하는 것이다. 권 사장은 지난해부터 이른바 ‘열정팀’을 직접 이끌고 있다. 열정팀은 각 부서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15명 정도가 매주 한 번 모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모임이다. 그는 “인수 전엔 계속되는 위기로 대부분의 직원이 무기력했다”며 “사기를 진작하고 부서 간 협업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열정팀을 꾸렸다”고 말했다.

열정팀의 아이디어가 속속 결실을 맺고 있다. 열정팀의 노력으로 작년 11월엔 ‘에코비데(UB-8520)’가 탄생했다. 버튼 하나로 비데의 수압과 온도를 최적의 사용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권 사장은 “이 제품은 특히 절전 기능이 뛰어나다”며 “에코 비데의 연간 전력사용량은 244.4㎾h로 동급제품의 12.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비데에 있는 음성 안내 기능에 한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 안내도 넣자는 의견을 반영했다.

그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고객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해 블로그도 직접 운영한다. 작년 2월부터 ‘비데 만드는 여자’라는 필명으로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sht76574)를 개설, 제품 홍보와 비데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올리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객은 1000~1500명. 누적 방문객 수는 40만명을 넘어섰다. 쪽지나 이메일을 통해 고객이 불만사항을 제기하면 즉시 해당 부서에 이를 전달, 개선해 주고 있다.

해외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삼홍테크는 세계 54개국에 진출했다. 전체 수출 물량의 30%가량을 일본에 내보내고 있다. 토토(TOTO) 등 현지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연간 5만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선 독일 게버릿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권 사장은 “앞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올해 매출은 작년에 비해 40%가량 늘어날 전망”이라고 기대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