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측 "단순한 실수"…금감원, 고의성 여부 조사
상장회사의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면서 ‘경영 참여’가 아닌 ‘단순 투자’로 지분을 매입했다고 신고하는 최대주주가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고의성 여부’ 조사에 나섰다.
◆공시는 ‘단순투자’지만 …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닥 제약업체 씨티씨바이오의 조호연 대표와 김성린 대표는 지분 25.19%(특수관계인 포함)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로 공시해 놓고 있다. 조 대표와 김 대표는 서울대 농과대학 동기로 1993년 씨티씨바이오를 공동 창업해 20년간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2009년 6월 지분 매입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돌연 변경한 이후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5% 룰’에 따라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들은 지분 보유 내역과 함께 취득 목적을 금감원에 신고해야 한다. 지분 보유 목적은 ‘경영 참여’(일반 보고) 또는 ‘단순 투자’(약식 보고)로 나뉜다.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최대주주는 ‘경영 참여’로 신고해야 한다.
코스닥 나노캠텍의 백운필 대표도 지난해 7월 ‘단순 투자’로 지분 보유 목적을 바꿨다. 백 대표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회사 지분 37.42%를 보유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신한과 자화전자의 최대주주도 각각 지난달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로 변경했다. 신한 최대주주인 S&K월드코리아 측은 지분 보유 목적을 바꾼 뒤 지분 26.73%를 매각해 보유지분이 84.38%에서 57.65%로 급감했다.
디지아이 최대주주인 최관수 대표는 지난해 5월 ‘단순 투자’로 변경한 뒤 8개월여 만인 지난 12일 ‘경영 참여’로 바꿔놓았다.
최대주주가 ‘경영 참여’로 지분 매입을 신고했지만 특수관계인을 누락해 보고해 온 사례도 있다. 삼목에스폼 대주주인 김준년 대표는 12일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이 31.04%에서 52.62%로 늘었다고 금감원에 신고했다. 삼목에스폼의 2대주주로 지분 21.58%를 보유한 비상장사 에스폼을 뒤늦게 특수관계인으로 합쳐 보고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지분 69%를 보유해 최대주주인 에스폼은 그동안 ‘단순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고 신고해 왔다.
◆금감원, 고의성 조사
해당 회사들은 대부분 ‘단순 실수’라고 밝히고 있다. 디지아이 측은 “지분 공시 보고서를 잘못 선택해 바로잡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화전자 관계자도 “최대주주와 무관한 실수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는 최대주주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신고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허위보고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위기재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위반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고의성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 투자’ 신고는 ‘경영 참여’ 신고와 달리 보유주식에 대한 담보 내역이나 취득에 필요한 자금 조성 내역 등을 공시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순 투자 목적으로 신고하더라도 대주주 주식양도세금 등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며 “고의성이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 최대주주들이 ‘단순 투자’로 보유 목적을 변경하는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