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면서 그룹 지주회사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그룹주가 하락세를 보일 때는 지주회사 주가가 가장 적게 떨어지고, 오를 때는 선두그룹에 속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룹 내 주요 핵심 계열사들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온 지주회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중간 이상은 가는 지주회사

12일 증권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지주회사 주가 상승률은 주요 계열사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들어 12일까지 CJ그룹 지주회사인 CJ는 2.40% 오르며 그룹 9개 종목 중 CJ CGV에 이어 주가 상승률 2위를 차지했다. 두산그룹 지주회사인 두산도 계열 6개 상장종목 중 2위를 기록했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 역시 1.74% 상승하며 17개 SK그룹 상장사 중 4위를 차지했다. 한화그룹 지주회사인 한화도 6개 계열사 중 주가상승률이 세 번째로 높았다.

지주회사는 그룹 계열사 주가가 하락할 때 가장 적게 떨어지며 주가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두산건설(-16.37%), 두산중공업(-16.61%), 두산인프라코어(-15.26%) 등 계열사 주가가 급락했을 때 두산은 8.36% 빠지는 데 그쳤다. CJ그룹 지주회사인 CJ 역시 작년 11월에 CJ프레시웨이(-14.34%), CJ E&M(-4.09%), CJ CGV(-3.55%) 등 9개 계열사 중 6개 종목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0.94% 상승하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SK도 작년 11월에 SK네트웍스가 13.40% 하락하는 등 10개 계열사가 하락할 때 18.09% 올랐다.

올 1월의 농심홀딩스(6.24%)나 지난해 9월의 LG(7.07%)처럼 그룹주가 상승세일 때도 과거와 달리 주가 상승률 상위권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CJ는 6개월 연속 주가가 올랐고, 농심홀딩스도 6개월 중 4개월 동안 주가가 상승했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저성장기에는 그룹 내 자회사들의 동반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주가가 저평가돼 있고 그동안 과실을 쌓아둔 지주회사에 투자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부사장은 “앞으로 지주회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개별 자회사의 실적 개선폭은 불확실성이 크다”며 “지주회사 관점에서는 주력 자회사의 실적 개선 방향성이 확실하기 때문에 자회사보다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주회사별 차별화 전망

전문가들은 향후 지주회사주에 대해 그룹별 상황이 다른 만큼 차별화를 띨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지주회사 가치가 전반적으로 ‘저평가’됐다는 판단이 많지만 그룹별로 사정이 다른 만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준섭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LG처럼 자회사가 많이 오르면 투자대안, 헤지수단으로 접근하는 종목과 CJ나 LS처럼 비상장 자회사의 가치가 부각돼 재평가되는 종목의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과거 지주회사에 대한 투자가 후순위로 미뤄졌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면서도 “지주회사 주가 전망은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가치평가나 그룹 내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