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22년 전 한 젊은이가 잘나가던 대기업 무역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뜻밖에도 그는 인천 연안부두 근처 번화가 신포동에 갈빗집 간판을 올렸다. 모두가 말렸지만 신혼인 아내는 그의 도전에 용기를 북돋아 줬다. 운도 따랐다. 1주일 만에 비브리오 패혈증이 대유행하면서 사람들이 횟집 대신 고깃집으로 몰렸다.

몸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행복했다. 1년 만에 투자 원금을 뽑았고 그 후로 매년 2~3개씩 지점을 늘렸다. 지금은 ‘경복궁’, ‘삿뽀로’, ‘고구려’ 등 11개 브랜드 70여 개 매장에서 매년 1500억 원을 벌어들인다. 외식 업계서는 잘 알려진 성공 신화다.

박노봉(50) 엔타스 사장이 더욱 주목받는 것은 그의 고집스러운 ‘100% 직영’ 원칙 때문이다. 엔타스 70여 개 지점을 모두 본사가 직접 운영한다. 그는 “외식업은 최소 5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어야 성공”이라며 “가맹 점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벌어지는 ‘한탕주의식’ 프랜차이즈 창업 붐을 걱정한다. 한식 세계화에도 이 원칙은 마찬가지다. 그는 “보여주기식 한식 세계화는 의미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1500명이 넘는 직원을 둔 외식 업체 경영자이지만 1주일에 4일은 반드시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평소 매장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새해부터 ‘5시 퇴근’을 실천 중이다. 그는 “사장이 설쳐 잘될 회사라면 잘될 리가 없다”며 웃는다. 지난 1월 22일 영등포 당산동 본사에서 박 사장을 만났다.
박노봉 엔타스 사장 "5년간 수익내야 성공…프랜차이즈 거품 안타깝죠"
프랜차이즈 사업을 안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런저런 제안도 많았을 텐데요.

식당은 계속 순이익을 내면서 적어도 5년은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쏟아부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되죠. 청담동에서 2~3년 반짝 돈을 벌고 문을 닫는 곳이 많은데 99% 손해 본 거예요. 프랜차이즈 제안을 여러 곳에서 받았지만 5년 동안 계속 돈을 벌면서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거절했지요. 잠깐은 잘될 수 있지만 꾸준하게 수익을 내서 자기 노력을 보상 받는 건 결코 쉽지 않아요.

프랜차이즈 창업 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 프랜차이즈 육성 정책이 많이 나옵니다. 1000개 이상 가맹점을 가진 기업을 100개 육성하겠다고 해요. 하지만 숫자만 늘리는 게 육성은 아니죠. 매장을 하나 열어서 5년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사실 그 정도로 숫자를 늘릴 수 있는 기반도 아니고요. 아직도 대부분 영세하거든요. 유명하다는 프랜차이즈들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내용이 안 좋아요. 잘되는 곳도 물론 있지만 언론에 나오는 ‘대박집’과는 거리가 멀죠. 진짜 소문처럼 잘된다면 돈을 끌어와서라도 자신들이 직접 하지 않겠어요.(웃음)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서로 책임을 함께 공유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은 모든 책임을 가맹 점주가 99% 다 집니다. 망해도 가맹 점주만 망하는 구조죠.

앞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생각은 없습니까.

가맹점들이 5년간 꾸준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찾으면 그때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겁니다. 벌써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만약 가맹점이 안 되면 내 돈으로라도 물어주겠다’는 정도가 안 되면 안할 겁니다.

요즘 한식 세계화가 외식 업계의 화두인데요.

얼마 전 싱가포르에 갔어요. 대형 쇼핑몰에서 한식당을 한 곳 겨우 찾았는데 제일 나쁜 구석 자리예요. 그것도 문을 닫고 영업을 안 하더군요. 메뉴판을 쭉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어요. 한국에서도 지역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게 다 다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냥 먹어라’는 방식은 통하지 않아요. ‘경복궁’이 미국에 진출한다면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하와이가 다 다를 겁니다. 철저한 현지화죠. 휴대전화를 찍어내듯이 똑같이 만들어 그냥 사라고 하는 건 맞지 않아요.
박노봉 엔타스 사장 "5년간 수익내야 성공…프랜차이즈 거품 안타깝죠"
한식 세계화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계적으로 가장 매력 있는 메뉴는 중식입니다. 파티하기 좋고 가격도 적당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중식을 이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워싱턴이나 뉴욕이나 특정 지역에서 잘된다고 그걸 세계화라고 할 수는 없어요. 세계 어딜 가나 골목마다 한식이 있고 현지인들 입맛에 맞게 퍼져 있어야 진짜 세계화죠. 5년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식당을 몇몇 도시에 보여주기식으로 여는 건 ‘공무원들의 세계화’일뿐이에요.

언제부터 외식업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대학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갔어요. 일본이 세계 부동산을 다 사들이던 버블 절정기였죠. 거기서 일문학 공부를 하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어요. 대학원 진학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귀국해 주식회사 대우에 들어갔죠. 그런데 일을 너무 많이 시켜요. 신혼 초인데 토요일, 일요일도 없어요. 아내가 저보다 배포가 훨씬 큰데 ‘주눅 들지 말고 한번 저질러 봐라’고 용기를 주더군요. 남들은 사업한다고 하면 집에서 제일 먼저 반대하는데 우리는 정반대였죠. 2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한우 갈빗집을 차렸어요.

갈등은 없었습니까.

그때는 외식업이 지금보다 훨씬 영세했어요. 특별한 노하우도 없고 호구지책으로 조그만 가게를 하나씩 열어 운영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대학 나오고 잠깐이지만 유학까지 갖다 온 사람이 뛰어들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때는 은행들도 외식업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부동산 담보가 없으면 돈을 빌리기 어려웠죠.

처음 식당을 연 곳이 어디였습니까.

인천 신포동 소갈비 집을 8000만 원에 인수했어요. 너무 비싸게 산 거죠. 나중에야 그걸 알았어요. 하지만 다행히 문을 연 지 1주일이 지나 생선을 먹고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려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되면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대우 다닐 때 월급으로50만~60만 원 받았는데 손님이 많은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면 100만 원 넘게 손에 들어와요. 아내와 손잡고 너무 행복했죠. 1년 만에 투자 원금을 회수했어요. 그 후 모든 일이 잘 풀렸어요.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일본은 외식업이 잘 발달해 있어요. 일본에 있을 때 나름대로 많은 걸 배웠죠. 그걸 흉내만 내도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외식업을 생계 수단이 아니라 비즈니스 개념으로 접근한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에요. 가장 먼저 인테리어 개념을 매장에 도입했어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세요.

1994년 삿뽀로 인천 본점을 지을 때 다들 이해를 못했어요. 무슨 음식점을 이렇게 크게 짓느냐고 의아해 했죠. 공간을 룸 위주로 만들고 몇 가지 인테리어 요소를 집어넣었어요. 고객들이 그걸 너무 좋아해요. 숯불 갈빗집만 해도 옛날에는 큰 상에 음식을 쭉 깔아 놓고 여러 손님들이 섞여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게 보통이었죠. 하지만 ‘경복궁’은 공간을 나눠 고객 편의를 높였어요.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객들이 음식의 양과 가격이 아니라 서비스의 질과 가치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시점과 그게 잘 맞아떨어졌죠.

음식의 맛과 질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최고 품질의 식재료를 사용합니다. 쇠고기 중에서도 품질이 가장 좋은 파트가 있는데 국내에 들여오는 물량 중 90% 이상을 엔타스가 소비하지요. 다른 부위 상품도 제일 비싼 최고만 씁니다. 창업 이후 이 원칙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가격이 올라가지 않습니까.

지점에서만 매년 15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죠. 유통에서부터 제조·판매까지 직접 컨트롤하는 일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이를 통해 가격을 낮출 수 있죠. 광고나 마케팅도 전혀 하지 않아요. 질 좋은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이유죠.

엔타스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한식·일식·중식 브랜드를 다 망라해 보유하고 있어요. 내부적으로 유통에서 제조·판매까지 모든 단계를 직접 하고 있고요. 이를 통해 다양한 조합이 가능합니다. 앞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적인 브랜드를 늘리려고 해요. 숯불 갈빗집 경복궁도 대중적인 브랜드를 하나 만들 겁니다. 일식집 삿뽀로도 마찬가지고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입점도 추진 중이죠. 디큐브시티에 삿뽀로 매장이 처음 들어갔는데 성과가 아주 좋아요. 경복궁과 중식당을 추가 오픈하는 공사를 하고 있죠. 저가형 출장 뷔페와 고급 호텔 뷔페의 중간 시장을 겨냥해 경제적인 가격에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터링 사업도 관심을 갖고 있어요.

중식 브랜드는 시장성이 있습니까.

한국은 세계에서 중식당이 가장 안 되는 나라예요. 싸구려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하죠. 화교들이 자기들끼리 뭉쳐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얼마 전 중식 조리장을 홍콩에 보냈습니다. 20년 넘게 중식 조리를 했지만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중식을 보고 온 적이 없어요.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일해 온 거죠. 홍콩에서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어요. 외국에서 중식을 먹으면 느끼하지 않고 배도 부르지 않는데 한국에서 먹으면 그렇지 않아요. 요리법도 차이가 나고 여러 가지가 다른 거죠.

어떻게 바꿀 생각입니까.

다른 나라 중식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개선해야죠. 중식이 이렇게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한 사람이 앞서 나가면 충분히 바꿀 수 있어요. 외식 업계는 잘되면 다들 와서 따라하거든요. 때로 메뉴판이나 전화번호까지 똑같이 카피하는 곳도 있지만요.(웃음)

외식업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일반 제조업은 공장을 하나 지으면 거기에 사활을 걸어야 해요. 제품이 팔리느냐 마느냐가 생사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외식업은 그렇지 않아요. 지점 하나 잘못 된다고 회사가 문을 닫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면서도 사업으로서 승부를 다 경험할 수 있어요. 잘되면 기뻐하고 안 되면 왜 실패했는지 배우면 됩니다. 고객들이 매장에 와서 즐기는 걸 보며 얻는 보람도 크고요. 가장 최근에 안산점을 열었는데, 고객의 전화를 가끔 받아요. ‘당신들이 있어 고맙다.’, ‘우리 동네에 지점을 내줘 고맙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저절로 힘이 나죠.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