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 선생님 모습에서 우리 할머니가 떠올라 가슴이 찡했어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눈물이 났어요.” “슬프지만 웃음도 있고, 감동받았어요.”

지난 5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연극 ‘어머니’(사진)를 관람한 광주광역시 보문고 학생들의 짧은 감상평이다. 이날 객석은 40~50대 관객 비중이 높은 여느 ‘어머니’ 공연과 달랐다. 보문고 1·2학년 270여명이 문화체험 프로그램의 하나로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이 연극은 일제 강점기와 6·25, 분단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관통하며 남편의 바람기와 혹독한 시집살이, 첫 아들의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굴곡의 현대사를 잘 모르고, 감각적이고 빠른 영상에 길든 10대들에게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풀어놓는 질곡의 인생사가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극은 주인공 어머니 황일순의 회상과 독백으로 전개됐다. 1인칭 구전 연극 형식이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절묘하게 조합되며 한 많은 어머니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14년째 어머니를 연기한 손숙은 완숙한 템포 조절을 보여주며 무대를 이끌었다. 때로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쏟아내는 입심으로 좌중을 웃기고, 때로는 격한 감정을 표출하며 보는 이를 숨죽이게 했다. 극 중에서 황일순은 자기 나이가 69세, 고향이 경남 밀양군 밀양면이라고 말한다. 손숙의 실제 나이, 고향과 같다.

그래서일까. 손숙은 황일순에 완전히 동화된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이는 어머니의 사실적인 묘사는 손숙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탁월함을 보여줬다. 수년간 ‘어머니’를 함께해온 연희단거리패의 젊은 배우들도 안정된 연기와 전통적인 몸짓 및 춤사위, 노래로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중장년층뿐 아니라 1층 객석에 자리 잡은 10대 관객들도 110분간 펼쳐진 수준 높은 무대예술에 호흡을 함께했다. 해학이 넘치는 배우들의 익살과 몸짓에 박장대소하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에 훌쩍거리기도 했다. 지루할수도 있는 초망자굿 장면에서도 집중력 있게 무대를 지켜봤다.

학생들을 인솔한 이봉형 보문고 교사(국어)는 “영화나 TV 드라마와는 달리 사람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연극 예술을 보여주고 싶어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손숙 씨와 이윤택 씨를 믿고 ‘어머니’를 선택했는데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